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 승인 2021.01.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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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사다난의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를 보내고 한 해가 다시 시작되었다. 새해가 시작되는 이 맘 때쯤이면 한 해를 설계하고 희망을 얘기하며, 서로 각오를 물어보고 덕담을 주고받기도 하는 데 올해는 분위기가 어색하다. 건강하고 힘내라는 말조차도 건네기가 조심스럽다.

 작년 새해벽두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쉽게 끝날 줄 알고 버텨왔건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변하는 확진자수에 일희일비했고 해를 넘긴 지금까지도 방역당국은 기진맥진하고 사람들은 노심초사하며 아슬아슬한 일상을 견디고 있다. 요즘 같으면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해야 되나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감염병과 같은 재난상황을 경험하면서 일터에서는 아웃되고 가정에서는 돌봄 부담 증가로 이중고를 겪으며 여성들의 삶은 어느 해 보다 팍팍해졌다. 어쩌면 재난상황보다도 여성에 대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살아남는 일이 더 절박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작년에는 유난히도 여성관련 이슈가 많았던 한 해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주빈 일당의 n번방 사태를 비롯한 디지털성범죄 사건은 사람들을 경악게 했고 변한 거 하나 없이 이름과 형태만 바꾸어 지금도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불안감과 국민관심도가 고조되었음에도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1년6개월 형으로 달걀 18개를 훔친 절도범의 형량과 동일하다며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에 대한 미국송환을 불허한 법원의 결정은 국민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복기를 거쳐 발현되듯 그동안 사회가 허용적이며 은폐해왔던 남성들의 성문제가 곳곳에서 터져 나와 사람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리더의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위력을 사용해 자행되었던 사건들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지불되고 있다. 이제는 조직의 위기관리 범주에 성인지감수성 낮은 남성들의 성 비위까지도 포함해야 조직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온라인에서는 n개의 방에 모여들고 오프라인에서는 룸살롱이나 별장으로 심지어는 자신의 집무실로 여성을 불러들인다. 문제가 드러나면 당사자들은 처음에는 절대 그런 일은 없었노라고 잡아떼다가 불필요한 신체접촉이었다는 모호한 말로 방어하는 걸 보면 자신의 행동이 범죄인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심각하다. 심지어는 여자문제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얼마 전 기쁨에 넘쳐 환호하는 안 이달고 파리시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기사내용이 눈길을 끈다. 프랑스는 공공부문에서 관리직을 임명할 때 특정한 성이 60%를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마 이 법의 취지는 여성들의 관리직진출 최소 40% 도달을 강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파리시는 관리직 중 69%를 여성으로 임명했고 성평등 국가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파리시에 9만유로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여성부시장 및 여성국장들과 함께 당장 수표를 들고 벌금을 납부하러가겠다며 이달고 시장은 환호했던 것이다.

 우리의 사정은 궁색하다. 정부는 건강하고 성평등한 조직문화정착을 앞당기자는 취지로 공직자에 대한 ‘여성관리자 임용목표제’를 도입하였다. 작년 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2019년 기준 4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관리자 비율은 중앙정부 18%이고 자치단체 중 서울과 부산만이 20%를 넘었으며 대부분이 10% 미만으로 전라북도는 8.3%라고 한다. 여성이 고위직에 너무 많이 임명되어 벌금까지 물게 되는 파리시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차별 없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고 싶다.

 비현실적인 소망일까?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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