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의 시기로 들어가는 인류
침잠의 시기로 들어가는 인류
  • 채수찬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 승인 2021.01.0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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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다’는 말이 있지만 ‘새해가 왔는데 새해 같지 않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의 상황은 꼭 그렇게 느껴진다.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커다란 구름인 감염병 대유행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언제나 이 구름이 걷힐까.

 백신개발의 성공으로 한 줄기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현재의 진행 속도를 보면 올해 전반기에 백신접종이 일반화되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고 활동과 이동의 제한이 풀리기는 힘들 것 같다. 당분간은 생활의 위축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이 감염병시기가 지나고 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꼭 백년 전 이른 바 스페인독감이 유행했다. 1차세계대전 말기였다. 1차세계대전은 전후 국제관계 처리의 잘못으로 20년뒤에 더 큰 전쟁으로 이어졌다.두 전쟁 사이의 기간에 기술과 산업, 그리고 사회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 때에 비추어본다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뒤에도 감염병 사태로 인한 변화는 크지 않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이번 코로나 사태가 인류에게 큰 심리적 충격을 주었다고 본다. 백년 전 스페인 독감이 있었던 시기에는 감염병이든 전쟁이든 인류의 삶 속에 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살고 있었다. 기아와 질병과 대규모 인명손실은 자연에서 발생하든 사회에서 발생하든 불가항력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류는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성취에 자부심을 느끼고 무슨 문제든지 인류의 지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몇 년전부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스라엘의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영생할 수 있게 되었고 인류는 전쟁 없이 살게 될 거라고 호언하였다. 그는 신나서 더 나가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호모 데우스’를 쓰기까지 하였다. 이번 감염병 사태로 인류는 이런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생물도 못되어 반생물인 바이러스에 온 인류가 2년 동안 꼼짝없이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는 스페인독감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학과 기술이 기성의 신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한 것은 맞다. 이에따라 기성의 신들이 지배해 왔던 영역이 변화되어 왔다. 남녀간의 관계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이슈들만을 보더라도 남녀평등, 이혼, 산아제한과 낙태, 동성결합 등의 이슈들에 대해 기성의 신들이 맞다고 했던 입장을 떠나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내놓는 새로운 결론을 인류사회가 좇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영화 ‘두 교황’을 보면 베네딕토16세 교황이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고 얘기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느님도 변화한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학이 발전되어 인류가 직면해온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은 하느님도 원하시는 바일 것이다.

 기술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실리콘밸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데이터 처리능력이 세상을 바꾸는 추세를 4차산업혁명이라고 지칭하며 많은 사람들이 떠받들고 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도 백신의 개발이 사태해결의 희망을 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인류의 구원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상숭배일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계기가 된 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다. 인류는 한 동안 침잠의 시기로 들어갈 것이다. 다양한 철학이,새로운 철학이 고개를 들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을 인용하자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날개를 편다.
 

채수찬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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