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형기(刑期)’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형기(刑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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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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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갑자기 또 복통이 찾아왔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식당에서 늦은 요기를 할 때쯤 아랫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요즘엔 복통이 수시로 찾아왔다. 복통은 처음에 밥때처럼 주기적이다가 차차 문제 수감자들의 행동처럼 돌발적으로 바뀌었다. 나는 불시에 내 몸을 찾는 복통이 두려웠다. 밤은 무섭지 않아도 불쑥불쑥 귓가를 할퀴는 고양이 소리가 섬뜩한 것처럼. 남에게 말 못 할 통증 때문에 큰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다. 한번은 일석점호 시간 직전에 찾은 복통을 참을 수 없어 화장실에 갔다가 점호 시간을 놓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일로 상관에게 호된 질책을 당했고 경위서까지 써야 했다.

 

  예고 없는 복통을 앓은 뒤로 내겐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복통이 찾아올 때마다 효연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효연이를 생각하면 통증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했다. 설령 그것이 위약 효과라 해도 효연이를 생각하는 일은 내게 분명 진통제 역할을 했다. 효연이는 내 대학 시절 과 후배이자 첫사랑이었다. 이십 년도 훌쩍 넘은 때의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효연이를 잊지 못했다. 효연이는 나보다 더 아픈 여자였다. 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제대 뒤 복학하고서 효연이를 처음 만나 다가가기 시작할 때 알았더라도 나는 어쩌면 효연이를 냉정하게 포기했을지 모른다. 효연이는 얼굴이 반반했다. 그런데 효연이는 남자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누구라도 말을 걸면 정색하며 바로 자리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그러면 남학우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효연이를 바라만 봐야 했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멀어지는 효연이가 남학우들에게 점점 신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효연이를 둘러싼 갖은 억측들이 난무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주로 남학우들이 멋대로 상상한 것이었는데, 어떤 친구들은 집안이 좋아 남자들에게 도도하게 구는 것이라 하기도 했고, 어떤 친구들은 남자에게 호되게 차인 적 있어 남자들을 벌레 보듯 하는 것이라 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효연이가 동성애자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사실 효연이가 지방의 대학에 와 혼자 자취했으니 그런 억측들이 난무할 법도 했다. 나도 효연이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나라고 효연이의 환심을 살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멀찍이서 효연이를 바라보며 효연이의 일상을 상상해 보는 것밖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효연이와 연인이 된 계기는 함께 떠난 졸업 여행이었다. 설악산으로 간 우리 과 학우들은 등산한 뒤 하산길에 계곡에 발을 담그며 놀다가 그만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동안 신선놀음에 빠져 있던 나 역시 조급한 마음에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남은 건 나와 효연이뿐이었다. 우리는 서먹했지만, 동행을 피할 순 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나는 가슴이 뛰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렘은 잠깐이었다. 날이 제법 어둑해지자 안전에 대한 조바심이 났다. 본디 방향치인 나로선 자칫하면 길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주저주저하다가 효연이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할 것 같았다. 입이 타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때 효연이의 눈길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효연이가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얼굴에 엷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효연이가 내게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망설이다가 효연이의 손을 잡았다. 효연이의 온기가 느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뒤 눈앞에 몇몇 학우들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그 뒤로 캠퍼스에서 공개적인 커플이 됐다.

 

  익숙한 복통이 진정됐지만, 이미 입맛은 사라진 뒤였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고 나오는데, 교무과 교위인 수남이가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수남이가 턱짓을 하며 내게 흡연실로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수남이는 체구가 땅딸막했어도 성격이 꼼꼼한 동료였다. 수남이는 고등학교 시절에 둘도 없던 친구이기도 했다. 문과와 이과를 선택해 진급한 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우연히 교정직 시험을 보는 시험장에서 재회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둘 다 시험에 합격해 같은 교도소로 부임한 사실을 알고서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교도소에서 다시 만났을 때, 수남이는 우리가 전생에 부부였을 거라며 낄낄거렸다. 턱없는 소리였지만, 나는 아내와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수남이가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나는 거부 의사를 보였다. 나는 삼 일 전부터 아내 성화에 못 이겨 담배를 끊었다. 수남이에게 말하지 않은 건 금연의 자신감이 없어서였다. 수남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웬일이야? 필터만 남을 때까지 피던 친구가.”

  나는 웃기만 했다.

  “그나저나 요즘 살도 빠져 보이는데, 몸이 어디 안 좋은 거 아냐?”

  수남이가 내 몸을 살펴봤다.

  “요즘 부쩍 피곤하네. 복통 때문에 잠 한숨 못 잘 때도 있고.”

  “병원 가 봐. 우리 나이 때는 몸이 고장 안 난 게 이상한 거라고.”

  나는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난 말야.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나도 여기서 형을 사는 것처럼 느껴져. 생각해 봐. 저 친 구들은 나가는 희망이라도 갖고 살지만, 우리에겐 별다른 게 있어? 내 신세가 저 친구들 신세보다 나을 게 없더라니까.”

  수남이가 교도소 사동 쪽을 가리키며 하소연하듯 말하고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집에서도 형을 살고 있었다. 결혼 생활이라는 미명하에 아내와 같은 호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형벌. 노동은 없었지만, 숨이 턱 막히는 생활이었다. 수남이 말대로 병원에 가 보는 게 숨통을 틔우는 일일 수도 있을 듯싶었다.

 

  오랜 종합 검진을 받은 뒤 마주한 의사 얼굴은 심각했다. 의사는 나를 잠깐 보다가 복부 시티(CT)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의사의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의사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췌장암 삼 기입니다.”

  의사가 중형을 선고하듯 말했다. 순간 복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나는 의사가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바로 입원해서 항암 약물 치료를 받으세요.”

  나는 의사 말을 여전히 실감할 수 없었다. 가끔 아내가 보던 드라마를 함께 볼 때, 드라마 속 의사가 하는 말 같았다.

  ”제가 지금 그럴 형편이 못 됩니다. 아직 직장을 쉴 나이도 아니고요.”

  의사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췌장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모르세요? 십 년 내 사망률이 구십팔 프로인 병입니다. 일을 그만두라는 뜻이 아니라 더 사시라는 뜻이에요.”

  의사가 나무라듯 말할 때서야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형을 구형받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의사가 몇 번이고 당장 입원할 것을 강조했지만, 나는 어물쩍 말하고 병원을 나왔다. 생각해 보니 사망률이 구십팔 프로라는 사실이 맞다면 이 프로의 희망을 찾는 일은 부질없어 보였다. 기껏해야 십 년인 내 삶의 유효 기간이 까마득한 형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병원에서 모범수로 지낼 자신이 없었다.

 

  집에 오니 아내는 불 꺼진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어유, 또 저놈의 시한부 인생. 저 상투적인 레퍼토리는 언제 끝날까?”

  아내는 여느 여자들처럼 드라마에 감정 이입돼 곧잘 투덜거렸다. 나는 드라마가 뻔한 줄 알면서도 매번 결말을 궁금해하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오는 동안 아내에게 할 말을 몇 번이나 연습했지만, 막상 아내를 보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배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거실에 들어서는 나를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드라마에 집중했다. 아내는 흔히 말하는 스타 강사였다. 주로 주부들을 대상으로 남녀 심리 및 부부 관계 강의를 했는데, 이름이 알려지면서 교도소나 관공서에서도 강의하곤 했다. 나는 아내를 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 아내가 강의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았을 때 안내를 맡았다가 눈이 맞아 연애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처음엔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명성을 얻으면서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콤플렉스라고 해도 좋지만, 나는 그런 아내가 부담스러웠다. 어느 땐 아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내가 내 눈앞에 있어도 눈 밖에 있어도 불안했다. 안방으로 조용히 들어가려는 순간 단둘이 있는 집에서 서로 말이라도 하며 살자는 아내의 타박이 떠올랐다. 아내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차마 내 병을 얘기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오히려 더 큰 타박이 돌아올 것 같았다. 그때 아내의 달력에서 모레 지방 시립 도서관 강의 일정이 적힌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아내에게 의례적으로라도 말을 붙일 수 있는 호재였다.

  “모레 멀리 가지?”

  “그날 늦게 들어올 것 같으니까 먼저 자요.”

  아내는 내 물음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의무를 다한 것 같아 돌아서려는데, 아내가 말을 툭 내뱉으며 나를 붙잡았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아내가 티브이를 끄고 돌아앉아 긴장됐다. 얘기 좀 하자는 아내와 마주할 땐 점호를 받는 수감자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옆에 앉자 아내가 민망할 정도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나한테 데면데면하는 건 괜찮은데, 현진이한테는 언제까지 무관심할 거예요? 당신 뜻대 로 되지 않은 게 지금도 속상해요?”

  아내가 또 현진이 얘기를 꺼냈다. 아내가 새삼 내 허물을 끄집어내는 것 같아 불쾌했다. 현진이는 일 년 전에 대학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 간 외동딸이다. 아내 말대로 우리는 딸의 유학 문제로 심한 갈등을 빚었다. 현진이가 유학 가고 싶다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나는 경제 문제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했고, 아내는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는 이상적인 명목으로 찬성했다. 당시 우리는 아내의 주식 투자 실패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현진이와 아내를 설득했지만, 끝내 내 의사는 무시된 채 현진이를 보내는 데 합의해야 했다. 유학 문제로 나는 원치 않게 현진이와도 사이가 멀어졌다. 그리고 현진이가 미국으로 떠난 뒤 그 간극은 고스란히 우리 부부의 갈등에 보태졌다.

  “하다못해 현진이한테 안부 메일이라도 보내면 안 돼요? 좋은 아빠까지는 아니더라도 평 범한 아빠는 될 수 있잖아요.”

  나도 할 말이 많은데, 아내가 일방적으로 내 자존심을 긁었다. 다른 부부들 문제는 곧잘 진단하면서 정작 우리 부부간의 문제는 들여다보지 못 하는 아내가 야속했다. 아내는 강사답게 언술에 능했다. 어쩌면 내 복통은 우리 부부 생활에 금이 가면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복통이 심해지면서 나는 가정에 충실할 수 없었고, 아내 말을 귀담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고통으로 표정 관리를 못 할 때마다 아내의 타박이 잇따랐다. 나는 침묵하고, 아내는 말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아내 말이 길어지면 나는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게워 내고 싶어 화장실을 찾았다. 그러면 아내의 타박이 뒤통수에 따갑게 닿았다. 오늘도 아내가 결국 침묵으로 투항할 때, 복통이 가라앉았다.

 

  교도소는 본디 변화가 없는 곳이었다. 정해진 복장으로 군대처럼 반복되는 생활을 할 때면 시간의 변화도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저 근무 교대만이 시간이 정지하고 있지 않음을 넌지시 증명해 줄 뿐이었다. 무뎌지는 복통처럼 일상에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할 때, 철희가 이감돼 왔다. 철희의 등장은 단번에 교도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철희는 이감한 날부터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로 교도소 사람들을 대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해도 낯선 분위기엔 주눅이 들 텐데, 수감 생활에 이골이 난 사람처럼 평온해 보였다. 나는 처음에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복역수의 이동은 내게 단지 하루하루가 지나는 일과 다를 것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희는 여느 수감자들과 달랐다. 마치 구속에 초탈한 사람처럼, 아니 암울한 곳에서 예수가 돼 모든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듯 웃음을 머금고 다녔다. 철희의 웃음은 아침 점호로 시작해 일석점호로 마칠 때까지 계속됐다. 웃음은 날이 거듭돼도 한결같았다. 나는 무엇이 그를 늘 웃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살인자였다. 집에 침입해 아내를 강간하려던 강도와 맞서다가 강도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죄였다. 누가 봐도 정상 참작이 될 만한 일이었지만, 법원에선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았다. 십 년이란 중형을 선고받았으니 억울할 법도 한데, 철희는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일 없이 새 교도소 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철희가 웃음을 잃지 않고 생활할 때, 교도소 사람들은 그를 의혹의 눈으로 바라봤다. 나 역시 그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흐트러지는 일이 없어 얄밉기까지 했다. 눈앞이 캄캄한 하루하루일 텐데, 웃음이 나오다니. 문득 내 예측 불가능한 삶과 철희의 형기를 맞바꿀 수 있다면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나라면 바꾸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철희의 웃음을 놓고 교도소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교도소를 빨리 나가기 위해 연기하는 것이라 했고, 어떤 이는 판결을 조롱하는 뜻으로 비웃는 것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새 환경에 순응하기 위한 처세로 보기도 했다. 나는 첫 번째 의견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텃새처럼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수감자들은 그의 웃음을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기존의 수감자들은 그저 실실 웃고 다닌다는 이유로 어느 날 그에게 집단 폭력을 가했고, 그 일로 교도소가 시끄러워진 뒤에는 폭력 대신 따돌림으로 그를 유령처럼 대했다. 우리는 그제야 태평한 해석을 거두고 현실로 돌아와 철희의 신변을 보호했다. 그런데 철희는 일주일에 두어 번 누군가로부터 꼭 편지를 받았다. 나는 그 점을 눈여겨봤다. 편지를 받는 날이면 철희의 입은 헤벌어졌다. 나는 그의 웃음이 의문의 편지로 길들여진 건 아닌가 생각했다. 편지의 비밀이 궁금하던 때, 나는 뜻밖에 내 잃어버린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수남이가 하루 종일 안 보여 교무과에 들렀다. 교도소 체육 대회 날인데도 수남이는 혼자 서신 분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수남이를 찾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

  “오늘 같은 날 공이나 차지 왜 직접 하는 거야?”

  나는 오늘도 철희에게 온 편지가 있을 것 같아 편지 뭉치를 넌지시 봤다.

  “서로서로 업무를 거들어 줘야 편하잖아. 참, 잘 왔어. 나, 담배 한 대만 피고 올 테니까 편지 좀 봐 줘. 자넨 끊었다고 했지?”

  수남이가 담뱃갑을 챙기며 물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했다. 수남이가 나가자 철희에게 온 편지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나는 허겁지겁 편지 뭉치를 뒤적였다. 운 좋게 철희에게 온 편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편지를 보낸 이의 이름이 낯익었다. 발신인의 이름은 송효연이었다. 아주 드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없었지만, 흔한 이름은 더더욱 아니었다. 송효연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같은 이름에 주소지까지 같다는 점은 내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곧 동일 인물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봉함된 편지를 당장 뜯어 보고 싶었다. 편지를 들고 있는데, 수남이가 담배 냄새와 함께 교무과로 들어섰다. 수남이가 나를 보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누구 편진데 그러고 있어?”

  수남이가 편지를 들여다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봤다.

  “송효연이란 이름 때문에 그러는 거야? 자네도 참! 전화번호부 한 번 찾아봐. 성남만 해 도 동명이인의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지.”

  수남이는 술자리에서 내가 술김에 말한 적이 있어 효연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철희, 그 친구랑은 무슨 관계야?”

  “글쎄, 부부 같던데?”

  수남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편지 좀 볼 수 있을까? 그냥 사연이 궁금해서 그래.”

  “이 친구가 큰일 날 소리 하고 있어. 누구 목 날아가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수남이가 화들짝 놀랐다. 수남이가 들어오기 전에 편지를 빼돌릴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더 이상 상황이 진전될 것 같지 않아 답답했다. 그때 복통이 시작됐다. 고통을 감출 수 없는데, 수남이가 나를 딱하다는 듯 쳐다봤다.

  “병원 좀 가 보라니까 그러네. 그러다 큰 병 나면 어쩌려고 그래? 선미 씨는 알고 있어?”

  나는 말할 힘도 없어 고개만 내저었다. 수남이가 생각에 잠겼다. 수남이가 급히 문을 잠그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자네니까 알려 주는 거야. 나도 들은 거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나는 수남이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이 친구 아내가 과거의 악몽 때문에 깜빡깜빡하나 봐. 남편까지 교도소에 있으니 정신이 온전할 리 있겠어? 그래도 남편은 기억하는지 편지를 쓰는 것 같더라고. 뭐, 그러다 보면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말야. 이 여자, 팔자가 기구해서 젊어서부터 부모 없 이 혼자 악착같이 살았다는 거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확신이 섰고, 효연이를 꼭 구원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주소 좀 베껴도 될까?”

  수남이는 내 부탁을 쉽게 들어줬다. 주소를 적은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교무과를 나왔다. 자신이 한 얘기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수남이의 당부가 아내 잔소리처럼 등에 따갑게 닿았다.

 

  교도소에 진단서를 제출해 병가를 냈다. 내겐 휴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비밀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했다. 다행히 긴 설득 끝에 내 병을 비밀에 부치고 나올 수 있었다. 수남이에겐 병가 소식과 효연이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만 알렸다. 수남이가 병명을 물었지만, 나는 함구했다. 사직서를 낼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극구 반대할 아내가 떠올라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아내 몰래 트렁크를 끌고 집을 나왔다. 일상의 고삐가 풀리니 후환이 두렵지 않았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려다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효연이의 집 주소를 확인했다. 성남은 초행이었지만, 그리 멀지 않아 반나절이면 갈 거리였다. 문득 효연이가 내게 자신의 가정사를 부끄럽게 털어놓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순전히 효연이의 자의가 아닌, 나로 인한 것이었다.

 

  내가 용기 내 효연이를 처음 뒤에서 안았을 때, 효연이가 소스라치게 놀라 내가 더 놀란 일이 있었다. 그때 효연이는 미안했는지 멋쩍어하던 내게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효연이는 자신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효연이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효연이는 아버지에게서 술내가 나는 날이 가장 끔찍했다고 했다. 하지만 효연이의 어머니가 남편의 학대를 알아차린 것은 이미 효연이가 아버지에게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의 일이었다.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밤늦게까지 건물 청소 일을 하며 가장 노릇을 했던 어머니로선 남편의 만행을 눈치채기 어려웠을 법했다. 어머니는 바로 효연이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했다. 남편이 외박한 틈을 타 효연이의 손을 이끌고 야반도주하다시피 집을 나왔다는 것이다. 효연이는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도 처자식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닌 아버지를 피해 몇 번이나 이사를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효연이는 오래지 않아 친척으로부터 아버지가 지방의 한 여관에서 객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효연이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깊은 한숨과 함께 토해 낸 뒤 한동안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효연이는 가녀린 어깨만 들썩거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효연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효연이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그저 효연이 앞에서 효연이를 꼭 안아 주는 일뿐이었다. 나는 그제야 효연이가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공부하러 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효연이는 올가미 같은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효연이 일을 떠올리니 울컥했다. 분노도 치밀어 올랐다. 내비게이션에 설정한 목적지가 효연이의 얼굴만큼 흐릿하게 보였다. 효연이의 얼굴을 아무리 그려 봐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결혼하면서 대학 졸업 앨범을 버린 게 후회됐다. 사실 효연이의 얼굴을 본 지 이십오 년 남짓 됐으니 설령 만난다 해도 못 알아볼 가능성이 컸다. 효연이가 나를 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겠지만. 운전대를 잡으려는데, 효연이 생각을 방해하듯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는 요새 내게 먼저 전화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아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어쩌면 내게만 무심했는지 모른다. 아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가 끊긴 뒤 차를 몰았다.

 

  일상의 둥지를 벗어나니 막 출소한 기분이었다. 탈옥한 수감자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오죽하면 수남이는 내 병가 소식을 듣고서 부럽다는 말까지 했을까. 성남이란 도시는 모든 게 낯설었지만, 효연이의 주소지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효연이를 만날 수 있느냐이고, 효연이가 나를 알아보느냐 하는 것이었다. 효연이와 이 년 가까이 연애하는 동안 한 번도 간 적 없던 성남에 오니 효연이와 공유했던 시간조차 오랜 퇴적층같이 아스라했다. 효연이는 그 시간을 파편으로라도 기억하고 있을까. 효연이 집은 마치 그녀의 처지를 말해 주듯 좁다란 길 가장자리에 있었다. 나는 길가에 차를 세워 둔 채 집 대문만 주시했다. 페인트칠이 벗겨져 녹이 슨 대문을 보니 괜히 초조감이 들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 효연이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문득 대학 졸업 뒤 교정직 시험을 공부하고 있을 때, 대학 동창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효연이 소식을 들은 일이 떠올랐다. 전철 안에서 남자와 함께 있던 효연이를 봐 아는 체했는데, 효연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난처해해 별말 없이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애써 덤덤한 척했지만, 그날 졸업 앨범에서 효연이의 얼굴을 얼마나 오랫동안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그때 털컥거리며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현실로 돌아와 소리의 정체를 찾았다. 곧 대문 밖으로 쓰레기봉투를 든 노파의 모습이 보였다. 노파가 구부정히 굽은 허리로 쓰레기를 길가에 내놨다. 노파를 붙잡고, 효연이 소식을 묻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꾹 참았다. 노파가 집 안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오늘은 더 이상 사람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듯 대문이 쿵 닫혔다. 차에서 내려 효연이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대문 앞에서 담 너머로 집 안을 넘겨다봤다. 집 안은 조용했다. 그때 가까이서 개가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놀라 도망치듯 차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궁금해 조수석에 처박아 둔 휴대 전화를 보니 아내가 건 부재중 전화 표시가 두 통 찍혀 있었다. 나는 또 외면했다. 그런데 내가 검진받은 병원에서 온 문자가 눈에 띄었다. 예상대로 입원을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신기하게도 효연이 집을 찾는 동안 한 번도 복통을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다.

 

  아침을 사 먹기 위해 모텔에서 나오는데, 수남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남이는 다짜고짜 내 아내 얘기부터 꺼냈다.

  “자네, 선미 씨 전화를 일부러 안 받는다며? 이혼이라도 하려는 거야? 요즘 세상에 선미 씨 같은 여자 없다는 거 잘 알잖아.”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늙어서 마누라한테 괄시받기 전에 선미 씨한테 잘해. 여자는 말야. 늙으나 젊으나 예쁘 다, 예쁘다 하면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노총각인 수남이가 부부간의 문제에 훈수를 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수남이가 눈치 없이 내 웃음을 넘겨짚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뭐야? 자네, 효연이라는 여자 만났어? 첫사랑 맞구나? 혹시 지금 그 여자랑 같이 있는 거야?”

  수남이가 호들갑스럽게 쉬지 않고 물었다. 수남이는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말을 이었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그 여자한테 딴 맘 품어도 소용없을 거야. 어제도 철희, 그 친구한테 편지가 온 걸로 봐서는 그 여자, 일편단심인 것 같거든. 혹시 자네, 벌써”

  나는 수남이 말을 다 듣기 전에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 뒤 수남이가 문자로 내가 묵는 숙소를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둘러대려다가 귀찮아 숙소를 일러 줬다. 갑자기 걱정하고 있을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효연이 생각에 아내의 존재는 금세 묻혔다. 허기가 밀려들었다. 나는 그새 내 병을 잊고 있었다.

 

  오늘도 효연이 집만 지키다가 어둑해질 때 모텔로 돌아오는데, 입구 한쪽에서 낯익은 여자 얼굴이 보였다. 아내였다. 순간 내 온몸이 뻣뻣해졌다. 그리고 죄를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아내가 나를 보더니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내가 내 소재를 알게 된 연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내가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아내는 며칠 못 본 사이에 얼굴이 핼쑥해져 있었다.

  “당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아내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 눈엔 원망 대신 연민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게 오히려 더 두려웠다. 내가 쭈뼛거리자 아내가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나랑 함께 병원에 가요.”

  아내가 뜻밖의 말을 했다. 수남이에게서 모든 사실을 들었다면 먼저 효연이에 대해 캐물을 줄 알았는데, 병원 얘기부터 꺼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런다고 죽을병이 나아요? 병이 있으면 알려야 할 것 아니에요.”

  아내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어깨를 들썩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있을 곳은 교도소도 여기도 아니니까 얼른 병원에 가요.”

  아내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 남은 삶을 병원에 가두기 싫었다.

  “당분간 좀 쉬고 싶어.”

  아내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예전에 의사가 나를 바라보던 표정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쉬면 되잖아요.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서 웬만한 병은 고칠 수 있다 잖아요.”

  난감해 주위를 돌아보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생각 같아선 아내를 모텔로 데려가 설득하고 싶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아내가 작심한 것처럼 얼굴을 들었다.

  “좋아요. 그럼 나도 당신한테 휴가를 줄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아내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조건’이란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신한테 사흘 휴가를 줄 테니까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대신 휴가가 끝나면 바로 집에 돌아와야 해요. 그리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돼요. 알았죠?”

  아내가 딱 부러지게 말하며 내 얼굴을 살펴봤다. 나는 복통 때문에라도 아내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아내와 적당히 타협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어려운 상대와의 협상치곤 그리 나쁘지 않은 소득이었다. 내가 타협안에 동의하자 아내가 웃음을 띠며 돌아섰다. 아내의 뒷모습을 본 순간 자책감이 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효연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효연이 집 앞에서 대기한 채 동정을 살피는데, 대문이 빼꼼히 열렸다. 그리고 곧 중년 여자가 대문 밖으로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듯 둘레둘레했다. 내 가슴이 설ㅤㄹㅔㅆ다. 중년 여자는 넋이 나간 듯 무표정했어도 하얗고 갸름한 얼굴을 본 순간 나는 효연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대학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효연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대학 졸업반이던 가을 무렵이었다. 수업이 많지 않던 때라 우리가 캠퍼스에서 여유롭게 연애를 즐기던 때였다. 그런데 내 병처럼 효연이에게 어머니의 죽음이란 비극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효연이는 졸업을 앞두고 어머니가 지병으로 죽자 깊은 절망에 빠졌다. 효연이는 내게 한 번도 어머니의 병에 대해 말한 적 없었지만, 어머니가 고생으로 얻은 병인 듯 보였다. 효연이는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자취방을 정리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상심한 효연이에게 아무 힘도 위안도 돼 줄 수 없었다. 이삿짐이 실린 트럭 앞에서 효연이와 헤어질 때, 내가 해 준 말이라곤 다음에 연락하자는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효연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날 이후 효연이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소식도 뚝 끊겼다. 그런데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 효연이는 마치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은 것처럼 그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마음이 저려 왔다. 지금 당장 효연이와 마주하지 않고서는 또 오랜 세월을 흘려보내야 할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효연이에게 가는데, 그때 전에 봤던 노파가 길 한쪽에서 모습을 보였다. 노파는 한 손에 종이 뭉치를 들고 있었다. 노파가 내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효연이에게 갔다. 효연이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번졌다. 예전에 보던 그 웃음이었다. 나는 길 한가운데서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 길 반대쪽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효연이와 노파에게 갔다. 노파가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효연이도 초점 잃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노파에게 수굿하며 어색한 인사를 했다.

  “뉘시오?”

  노파가 효연이를 등 뒤로 보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노파는 순리를 거스르지 못한 듯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효연이 대학 선배인데, 효연이를 보러 왔습니다.”

  내가 용건을 말하자 노파가 내 아래위를 느리게 훑었다. 효연이는 나를 보며 눈만 둥글둥글 굴리고 있었다. 노파가 효연이를 집 안으로 가만 들여보냈다.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몰라도 상처 받은 아이니까 조용히 살게 해 주시오.”

  노파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그냥 이대로 갈 순 없었다.

  “효연이가 처한 상황을 압니다. 잠깐 몇 마디라도 얘기 나눌 수 없을까요?”

  노파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실룩거렸다.

  “제발 그냥 가시오. 저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오죽하면 이 시어미가 아들 놈 마 음 다잡게 하겠다고 저 아이를 대신해 편지를 쓰겠소. 저 아이 상처 건드리지 말고 순리 대로 살아 주시오.”

  노파가 내게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사정했다. 불현듯 철희의 웃음이 떠올랐다. 철희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싶진 않았다. 더 이상 노파에게 떼를 쓸 수 없었다. 닫힌 대문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결국 노파에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래도 효연이 얼굴을 본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배가 더부룩했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예정보다 이르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전화 대신 문자를 보낸 걸로 봐서는 내 자유에 대한 배려 같았다. 문자 내용도 친절하고 자세했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매주 한 번 티브이 저녁 생방송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니 혹시라도 집에 일찍 오거든 장 봐 놓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라는 당부였다. 집 앞에 오자 이번엔 병원에서 입원을 재차 독려하는 문자가 왔다. 일상으로 복귀한 게 비로소 실감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쳇바퀴 도는 일 같았던 일상이 새 삶을 얻은 듯 신선했다. 휴가로 삶이 연장된 기분이었다. 나는 내 삶에 주어진 기간을 따르기로 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없었다. 아내의 부재가 모처럼 허전하게 느껴질 때, 피로가 몰려왔다. 트렁크를 거실 한쪽에 밀어 놓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내의 당부가 생각났다. 티브이를 켜 채널을 돌려 봤다. 마침 아내가 출연한 방송이 시작하고 있었다. 티브이에서 보는 아내 모습이 낯설었다. 아내가 진행자의 소개로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섰다. 나는 어느새 방청객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곧 아내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무슨 일 때문인지 아내 눈이 촉촉이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다 방송 사고라도 내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아내가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갑자기 우리 가정사와 내 얘기를 꺼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시한부 삶을 언급하며 자신을 책망했다. 자신이 미처 남편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고, 그것이 부부간의 문제를 일으켰다고 고백했다. 진행자는 물론이고 패널들과 방청객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민망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더 이상 티브이를 지켜볼 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풀쑥 치솟는 기분이 들었다. 그 뜨거운 것은 내게서도 눈물을 쑥 빼게 할 듯싶었다. 볼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기 위해 입원 준비를 했다. 입원 준비를 마치고 부엌으로 가니 아내의 마음이 나를 반겼다. 형기를 마친 기분이었다. 이참에 푹 쉬어도 좋을 것 같았다.

▲ 김완수 씨 당선 소감

 어느덧 십 년째 본격적으로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 띄엄띄엄 몇 군데 신춘문예의 한두 부문에 응모하던 일이 그 이후론 해를 거르지 않고 거의 모든 신춘문예에 응모할 만큼 신춘문예에의 도전은 제게 연례행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도전을 거듭하는 동안 몇 번의 당선 영광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 당선 소식을 듣고 얼떨떨한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믿기지도 않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소설이 제게 오랜 숙원이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소설은 그만큼 제게 작가로서의 최초의 꿈이자 종국의 꿈이었습니다.

  습작기를 제외하고 소설을 진지하게 쓴 지는 칠 년이 됩니다. 재작년과 작년에 지역 신춘문예 소설 부문 최종심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일은 소설가의 꿈을 제 가슴에 화석처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일은 오히려 저를 절망으로 내몰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오기와 뚝심으로 꿈을 향해 달려온 제 자신이 대견스럽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굳힌 데는 황석영 소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 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는 감히 소설에 다가서지 못했을 겁니다. 소설을 독학으로 써 왔기에 그 둘은 제게 문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스승이나 다름없습니다.

  소설가가 된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분들이 차례로 떠오릅니다. 우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오래전부터 말없이 제 외로운 길을 지지해 주신 어머니와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와 아동 문학을 쓰는 문우들에게도 마음을 전합니다. 또 소설의 캐릭터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 내 첫사랑 효연이에게도 기쁨을 전합니다. 끝으로 어쩌면 악화된 눈 건강 때문에 더는 소설을 쓰지 못했을 제게 큰 상을 주신 전북도민일보사와 심사 위원 선생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한 부조리와 인간 소외를 고발하는 소설가가 되도록 글밭을 열심히 일구겠습니다. 제 지나온 문학 역정이 모든 문청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완수

 전북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석사
 2013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2015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꿈꾸는 드러머(2019)’와 단편 동화집 ‘웃음 자판기(2020)’

 

▲ 김한창 소설가 심사평

 소설의 기본단위는 문장에 있다. 문장이 모여 작은 사건의 모티브가 되고 작은 사건이 집합하면서 행동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소설은 계층적으로 조직되어진다. 2020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작품심사에서 경합 점에 이른 것은 「대나무가 있는 집」「음짓말 이야기」「형기(刑期)」세편의 작품으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세편 중, 단 한편을 뽑아내기 위해 다시 정독하는 일이다. 이중 「대나무가 있는 집」은 단순한 농촌이야기를 흥미롭게 이어간 작품으로 단어의 선택이나 흐름, 농촌사회의 현실감각과 문장어법이 걸림 없이 탁월하다.「음짓말 이야기」는 양짓말 사람들과 음짓말 사람들의 빈부차이를 대칭한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대나무가 있는 집」과 「음짓말 이야기」두 작품이 탈락 된 것은 퍽 아쉽다.

 

  당선작 형기(刑期)는 전형적인 주인공 나 자신에 대한 큰 비중의 바깥이야기가 줄기로 뻗어가면서 그 줄기 속에 액자 소설로서의 안 이야기가 서술되는 서사구조로 되어있다. 함축적 기능을 중시하는 단편소설에서 작품의 구술은 의미전달이나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배열이 탁월하다. 특히 어떤 체계의 요소들을 결합시키고 있는 관계의 총화라 할 수 있는 소설의 구조(strure)나 기승전결의 팽팽한 플롯(plot)이 독자의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데 기여하고 또 상투적 비유가 아닌 독특하고 적절한 비유는 서사의 본질을 어필하는데 크게 기여 했다. 단순한 한 사건의 진행으로 구성되는 단일인물이 단일사건을 빚어냄으로써 단일주제를 나타내는 단편소설로서의 플롯(simple plot)의 단일화와 압축과 암시는, 독자가 사유할 수 있는 여백까지 할애함으로써 격을 높인다. 교도소에서 죄인들의 형기를 관리하는 주인공 나의 예고 없는 갑작스런 복통이 올 때마다 대학 후배이자 첫사랑의 효연이를 생각하면 통증이 가라앉는다. 췌장암 3기의 그는 당장 입원할 것을 의사가 권유하지만 삶의 유효기간이 십년에 불과한 까마득한 형기(刑期)처럼 느끼면서도 입원하지 않는다.

 

  본디 변화가 없는 교도소에 살인범 철희가 이감되어오고 철희는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려던 강도와 맞서다가 강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죄로 10년이란 중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로 그에게 온 아내의 편지봉투에 써진 이름이 아이러니하게 대학시절 첫사랑연인 효연이다.

  췌장암 3기를 선고받은 그에겐 휴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교도소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낸 그는 이제 자유를 누리고 싶다. 아내는 유능한 스타강사로 교도소에 강의 차 왔을 때 안내를 해주다가 눈이 맞아 결혼했다. 아내가 명성을 얻게 되자 자신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내가 변하기 시작한다. 언어가 부재된다, 딸 현진은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는 아내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큰 타박이 돌아올 것 같아 자신의 병을 얘기할 수 없다. 병가를 낸 그는 살인범 철희에게 보낸 효연의 편지봉투 주소를 보고 며칠 동안 그녀를 찾아 나서지만 먼빛으로 중년의 효연이를 볼 뿐이다. 사형선고 같은 남편의 췌장암을 알게 된 아내는 그에게 휴가를 준다. 집에 돌아오지만 아내의 부재가 모처럼 허전하게 느껴진다. 마침 티브이에서 스타강사로서 아내가 방송이 시작된다. 진행자의 소개로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선 아내는 갑자기 눈이 촉촉이 젖은 모습으로 말한다. 아내는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갑자기 남편의 시한부 삶을 언급하며 자신을 책망한다. 자신이 미처 남편을 들여다보지 못했고 그것이 부부간의 문제를 일으켰다고 고백한다. 진행자와 패널들과 방청객들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아침 일찍 병원을 가려고 그는 입원준비를 한다.

  ‘형기(刑期)를 마친 기분이다. 이참에 푹 쉬어도 좋을 같다.’라고 생각하면서…….

  결론적으로 작품 형기(刑期)는 단편소설이 지니는 구조가 완벽에 가깝다는 데에서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 김한창(한국교수작가회, 소설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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