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초배지’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초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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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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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어머니가 화장대 앞에서 당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칠십 년의 세월이 말해주듯이 하염없이 거친 얼굴이다. 한여름의 밭에서 기미가 올라왔고, 스킨과 로션 없는 생활을 해오면서 요철이 심해졌다. 형광등에 반사될 때마다 초배지(初褙紙) 같은 피부가 아른거린다.

 초배지는 초배할 때 사용되는 종이다. 초배가 정식으로 도배하는 정배 전의 애벌도배라면 초배지는 애벌벽지다. 초배지의 특성상 보이지 않는 장소에 작업하기 때문에 벽지보다 허름한 신문지나 부직포가 사용된다. 그러나 아무리 허름한 종이여도 초배하지 않은 벽은 매끄럽지 않고 벽지가 쉽게 떨어진다. 외유내강이라는 한자성어처럼 외부가 말끔하기 위해서 초배지가 내부에서 단단하게 받쳐주어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신혼집을 마련했을 때 시어머니가 손수 초배지를 붙여주었다. 기존의 벽지를 뜯었더니 원래 그런 색이었는지 변색되었는지 누런 초배지가 나왔다. 시어머니는 그것을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콘센트 뚜껑을 떼었다. 시어머니는 벽의 구멍을 메운 뒤에 당신의 몸보다 큰 초배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벽지로 덮을 것이어서 대충 붙여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볼품없어 보여도 도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바로 초배라는 것이다.

 칠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서 실크벽지 같이 곱게 자랐던 시어머니는 몇 십 년의 세월 동안 초배지마냥 거칠어졌다. 세월의 풍파에 실크벽지가 떼어지고 초배지가 날 것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절망하지 않고 당신의 삶을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자식들을 키우고, 농사꾼이었던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도배기능사로서 직업에서 이바지했다. 시어머니의 삶은 초배지만 남겨진 상태였지만 그것은 여전히 집안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종이였다.

 시어머니가 도배기능사가 된 것은 시아버지가 농사꾼이 되어서였다. 시아버지는 사과나무의 품종을 개발하고 싶다는 야심찬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삼형제의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고 결혼한 뒤에는 처자식이 문제였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복지관의 도배프로그램을 등록하고 이제부터 당신이 일하겠다고 통보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는 동기생들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철야작업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시아버지가 다쳤을 때나, 농번기일 때 이전에 그랬듯이 시아버지의 역할을 다시 넘겨받기도 했다.

 생계가 안정되었을 때 둘째 아들인 내 남편이 친구와 수제버거집을 열었다. 시어머니의 적금과 친구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보탰지만 그것은 일 년 만에 망했다. 친구는 많은 양의 수면제를 먹었고 남편은 골방으로 틀어박혔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만 시어머니는 질책도 재촉도 없이 기다렸다. 하루 세 끼의 밥을 닫힌 방문 앞에 놓아주는 사이 시어머니의 마음은 한 겹, 두 겹, 생채기가 나면서 벗겨졌으리라. 남편은 일 년 만에 바깥으로 나왔고 지금은 건강한 회사원으로서 시어머니의 다친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초배지는 도배지 중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수행한다. 벽지가 표면적인 미(美)를 담당한다면, 초배지는 실제적인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벽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고, 요철을 메워주고, 방습과 단열을 도맡아 하는 도배지. 어쩌면 시어머니의 삶을 그것과 비길 수 있으리라.

 몇 달 전 시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리고 나서 집안은 초배지가 떼어진 벽처럼 곳곳에서 하자가 두드러졌다. 시아버지는 농사를 계속할 수 없어서 밭의 일부를 팔았고, 남편은 입맛을 잃었다. 나는 나대로 집안의 들보가 내려앉은 것 같아서 불안했다. 시어머니가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어머니는 내 생각보다 더 세세한 부분까지 맡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안의 문제가 불거졌고 나는 병실을 드나들면서 시어머니의 상태를 살폈다.

 만약 나나 남편이 환자였다면 시어머니는 초배지처럼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당사자에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일을 사다주거나 마실 물을 떠다주는 것처럼 바깥으로 드러나는 시중밖에 들어주지 못했다. 벽지 아래의 초배지처럼 내색하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다. 언제나 뒤에서 당신의 삶으로써 묵묵히 삶의 교훈을 가르쳐주는 시어머니에게 나는 초배지의 의미를 새긴다.

 시어머니는 좋아하는 과일을 물으면 과일 같은 것은 사오지 않아도 된다고 거절한다. 친구들이 오기로 했다면서 며느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돌려보내려고 하기도 한다. 가끔 나와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시어머니는 누구보다 나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부담될까 봐 자꾸만 사랑을 가슴으로 삼키는 것이다. 풀을 너무 많이 바른 벽지는 쭈그러들기 때문에, 또한 너무 적게 바르면 들뜨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을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붙이고 있는 것이리라.

 벽지를 제거할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종이이자 도배할 때 가장 먼저 붙이는 종이가 초배지다. 초배지는 도배에서 호위사이자 선구자다. 기존의 벽지를 제거할 때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도배할 때 거친 시멘트벽을 맨몸으로 막아선다. 시어머니를 포함해서 모든 ‘어머니’가 들어가는 존재들은 살아 있는 초배지가 아닐까. 시어머니, 작은 어머니, 큰 어머니…… 어머니라고 불러왔지만 어머니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특정한 분야에서 바탕이 되는 사람들을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 분야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키워주고, 사랑으로 가르치는 근본이다. 무심하게 발음했던 어머니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초배지 같은 시어머니의 얼굴을 더듬어본다. 우리 집안의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남루를 덮어오고, 자식과 남편의 실패와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고단한 세월이 피부로 느껴진다.

 시아버지가 젊은 시절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남편이 삶을 잃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절망했을 때 꿋꿋이 기다려주었던 시어머니. 초배지의 역할을 해주었던 시어머니가 있어서 말끔하게 도배된 집안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직포 위에 올리는 실크벽지처럼 시어머니의 거친 손을 내 부드러운 손으로 정배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에는 내가 시어머니의 뒤로 다가가서 시어머니의 손에 내 손을 포갠다. 시어머니가 바깥으로부터 우리 가족을 지켜주었다면 나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로부터 시어머니의 수고를 덜어주어야지. 거울에 비치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일순간 환해진다. 시어머니의 미소에 내 미소를 한 움큼 보태본다.

 

▲ 우마루내 씨 당선 소감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장편소설을 쓰는 동안 4년이 지났다. 매년 200자 원고지 천 매 분량의 소설을 썼다가 지우면서 나는 자주 행복했고 그만큼 속상했다.

 수필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나를 위한 소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얻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지난 계절. 올해의 끝자락에 나는 비로소 그들이 보내온 따뜻한 화답을 받았다.

 수필을 쓰면서 마음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는 방법을 배웠다. 이 귀중한 가치를 되새기면서 다시 한 번 긴 글을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나를 응원해주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성문에게 나의 마음을 전한다.

 

 ▲우마루내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장편소설 <터키어 수강일지> 출간
 포토에세이 <송림동 사라진 풍경의 기록> 공동출간

 

▲ 김경희 수필가 심사평 “돋보이는 작가의 통찰력”

 신춘문예 농사는 연말이 되어야 결판이 난다. 그래서 추석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면 신춘문예 글 농사꾼들은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신문사가 당선작을 확정하는 것은 대개 크리스마스 전후이다. 지난해는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역병으로 세상이 온통 구름 속에 갇힌듯했다. 그래서인지 마스크를 쓰고 벗으면서 일상에서의 자유와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렇듯 독 묻은 세월 속에서 신춘문예라는 등용문을 통하여 거듭나고 싶은 응모자들 노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거운 가슴으로 응모작품 앞에 앉았다. 심사자는 외롭다. 이름도 얼굴도 모른 사람들이 컴퓨터 자판 두드려 만들어 놓은 문자만을 읽어야 되기 때문이다. 기계가 토해낸 문자 속 문장에서 작가의 삶과 문학적 성향을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정서적 감각과 철학, 예술적 역량과 세계관까지를 상상하고 추론해야 한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곡괭이를 탁 내리쳐 한 번에 금맥을 발견하듯 눈에 번쩍 띄는 작품과 만남이다. 그런 꿈을 안고 응모작품을 접수 순서대로 넘기면서 제목을 먼저 살폈다. 다음 내용을 읽어가면서 작품을 A · B로 나누고, 다시 심도 있게 채굴하듯 해독해 나갔다. 그 결과 「초배지」, 「쇠시리하다」, 「달팽이 키우기」 세 작품으로 압축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초배지」를 쓴 작가를 당선인으로 확정했다. 초배지(初褙紙)는 벽지로써 초벌 도배지로 쓰이는 종이다. 집안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종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숨어 우리 몸의 속옷 같이 삶을 지탱해준다는 내용이다. 이어서 작가는 시어머니의 삶을 초배지 역할로 연상시키며 이미지화하고 있다. 삶에 대한 통찰력과 예리한 시선이 돋보였다. 문장의 완성도도 무난하여 신춘문예 작품으로써 손색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끝으로 코로나19로 우울한 시대에 정성껏 작품을 빚어 투고해준 모든 분에게는 다음 기회의 홈런을 부탁드리고 싶다. 당선인에게는 ‘수필가는 많아도 수필은 없다’고 하는 시대에 ‘전북도민일보’의 명예를 생각하면서 끝까지 작가로서의 사명을 다할 것을 당부하며 축하드린다. 

 / 김경희(수필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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