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신인작가들에게 꿈을 심다
신춘문예, 신인작가들에게 꿈을 심다
  • 안도 문학평론가
  • 승인 2020.12.1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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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부활에 박수를…

 해마다 가을로 접어들면 각 신문사들이 신춘문예 공고를 다투어 내기 시작한다. 더구나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하는 이맘때면 전국의 문학 지망생들은 신춘문예의 높은 벽을 향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지독한 몸살을 않기 시작한다. 한 해 동안 피를 말리며 다져온 원고지와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소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돌림병은 신춘문예 공모를 알리는 사고(社告)가 실릴 때부터 시작하는데, 장석주 시인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대개는 안절부절을 못한다. 밥맛을 잃고, 잠을 설치고, 돌연 침울해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비명을 지르다가도 미친 듯 웃는다. 사람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중요한 비밀을 다루는 국가의 정보국 사람처럼 보인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만 몰래 무언가 끄적인다. 이들은 외상이 없기 때문에 멀쩡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반쯤은 얼이 빠진 상태다. 신춘문예 열병을 앓는 문학청년들의 증상을 묘사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돌림병은 새해가 되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큰 후유증이 없는 아름다운 병이다. 그런데 우리 지방에서도 그동안 중앙지에만 매달리다가 1900년 말경 몇 일간지들이 문학도들의 꿈을 부풀려 왔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 갑자기 전북도민일보가 신춘문예를 중단하여 한쪽 날개를 잃은 느낌이었는데 금년에 다시 모집 공고를 하니 눈이 번쩍 뜨여 박수를 보낸다.

  신춘문예의 시작은 우리 신문의 창간과 맥을 같이한다. 1910년 매일신보가 창간되고 1914년 ‘신년문예 모집’을 공고하여 각 부문별로 입선작을 발표했다. 이후 신춘문예는 여러 부문의 문학 신인 선발을 목적으로 각 신문사에서 매년 행하는 문예 행사로 정착되었다.

  이제 신춘문예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관행이 되었지만 신춘문예 덕분에 한국 근대문학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제 더 나은 등단구조를 모색해야 할 때인데 신문사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한국만의 등단제도라고 해서 폄하 하려는 것은 아니고 예비 작가들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대중적인 통로인 동시에 세간의 주목을 받을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신춘문예 제도는 한쪽엔 긍정의 날개를, 다른 한쪽엔 부정의 날개를 달고 있는 새와 같다는 것이다. 즉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신춘문예의 존재만으로도 창작 의욕을 얻는다. 하지만 후속 지원이 미비하다는 점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신춘문예에서 일 년에 수십 명이 등단했다가 몇 편 쓰고는 사라진다. 등단만 시켜놓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춘문예용 작품‘ 양산이나 심사위원의 연령대를 문제로 들고 있다. 아직도 고령의 심사위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공모자들이 심사위원의 취에 맞는 작품을 쓰려고 한다. 심사기간 또한 너무 짧다는 것도 큰 문제다. 특히 심사위원의 연임이나 중복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매년 똑 같은 인물이 심사를 하다보니 문하생이나 지인들을 등단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제 신문사마다 천편일률적인 현행 공모 시스템을 과감히 탈피하여 보다 진취적으로 변형된 신춘문예 제도를 시행했으면 한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만 모집하거나 독특한 주제가 있는 공모 문안은 볼 수 없는 것일까?
 

안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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