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과 그 후손의 비대칭성에 대해
율곡과 그 후손의 비대칭성에 대해
  • 장상록 완주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 승인 2020.12.14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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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모자(母子)가 또 있을까.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오늘 주고받는 화폐 속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한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율곡의 무거움이다.

  신사임당이 낳은 일곱 자녀 중에 율곡이 없었다면 그녀에 대한 기억은 오늘의 그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천재들 중에서도 율곡은 가히 독보적이다.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말조차도 율곡의 빛을 다 담을 수는 없다.

  신사임당 죽음에 충격을 받은 율곡은 금강산에서 약 1년간 승려 생활을 한다. 선비로서 승려가 된다는 것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금기 영역이다. 환속 후 생원시에 장원급제한 율곡이 성균관에 들어가려할 때 유생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던 것은 한편으로 너무도 당연하다. 심통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성균관에 들어가긴 했지만 불교 이력은 이후 반대파에서 율곡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뿐 아니라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논란이 된다. 그런데 방점은 따로 있다.

  너무도 지우기 힘든 흠(?)에도 불구하고 율곡은 곧 조선이었다는 사실이다.

  율곡 이후 문묘(文廟)에 배향된 그 누구도 율곡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그토록 빛나는 율곡의 후손은 어떤 모습일까. 조선은 완벽한 일부일처(一夫一妻) 사회다. 왕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이 그렇듯 남편과 아내는 오직 일대일의 관계다. 처(妻)와 첩(妾)의 관계는 왕과 신하의 모습 그대로다. 만일 조선이 일부다처(一夫多妻) 사회라면 서얼(庶孼) 문제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부인에게 아들이 없으면 조선 사대부는 서얼 대신 양자를 들여 대를 이었다.

  자존심 강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가장 사랑하고 어려워했던 존재는 아들인 상우(商佑)였다. 상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추사도 ‘아들 바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추사는 상무(商懋)를 양자로 삼았다. 상우가 서자였기 때문이다.

  추사는 두 살 어린 상무가 서형(庶兄)인 상우를 혹시라도 냉대할 것을 염려해 각별한 당부의 말을 남기지만 적통이 상무인 것은 변함이 없다.

  율곡의 후손은 어떨까. 율곡의 부인은 곡산(谷山) 노씨(盧氏)다. 그런데 둘 사이엔 자녀가 없었다. 결국 율곡의 두 아들과 딸은 두 명의 측실(側室) 소생이다. 놀라운 것은 율곡이 양자를 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율곡 후손 누구도 양반을 자처할 수 없게 되었다. 율곡의 딸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에게 가지만 정실이 아닌 측실이었다.

  율곡의 외동딸이 첩이 된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문제의 궁극적 책임을 성군(聖君)이라는 세종(世宗)에게 묻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부분은 성리학이 가진 세계관에 있다. 오늘 우리에게 율곡을 비롯한 선현(先賢)의 존재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 시작도 거기서 부터다.

  적잖은 한국인들이 성리학적 가치관의 청산을 말한다. 그것은 일정부분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우린 무엇을 알고 있는가? 청산할 대상이라면 그것이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앎이 전제 되어야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가치는 여전히 이(理)라는 사실이다. 불편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방식에서도 그것은 여전히 공고하다. 다만, 그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 영역은 아니다. 아이를 차량에 남겨두고 쇼핑하던 젊은 한국인 판사 부부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도 그렇지만, 그들을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나 보던 모습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처럼 그것은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차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해결하지 못한 궁극의 문제는 빛나는 율곡과 그렇지 못한 후손에게 있다. 그것은 단순한 차이의 문제가 아닌 본질에 대한 의문이기에 그렇다.

 장상록(완주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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