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에 산다] (16) 社會의 상처 어루만지기 33년...이리 기독영아원장 崔承裕씨(최승유)
[보람에 산다] (16) 社會의 상처 어루만지기 33년...이리 기독영아원장 崔承裕씨(최승유)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12.05 0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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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바라지에 온 가족 동원
거리의 어린이 알뜰하게 키워
“고아 사랑이 주님 영접하는 길”


‘어린이를 내몸같이 사랑하자’는 院訓에 따라 33년을 하루같이 어린이를 보살펴온 기독영아원장 崔承裕씨(최승유·84)는 “명절때면 어린이와 학생들이 떼지어와 영아들에개ㅔ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 있는데 그보다는 사회의 성인들이 영아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영아사업의 어려운 점을 실토한다.

 지난달 장례를 접전하기 위해 산길을 오르다 고혈압으로 쓰러진뒤 거동조차 불편한 崔원장이 기독영아원을 설립한 것은 지난 1956년 1월. 고향이 黃海도 海州시인 崔원장은 해방전 서울에 내려와 당시 20살때 구세군 사관학교에 입학, 2년제과정을 마치고 단임사관이 된다.

 그후 群山에서 현재의 보육원에 해당하는 후생학원을 설립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곳 裡里시 남중동 216번지에 전국에서도 규모나 시설면에서 으뜸을 보였던 기독영아원을 운영하다 현재의 이리공단 후문옆(이리시 신흥동 406-71)으로 이사해 왔다.

 한때는 150명에서 200여명의 영아들을 도맡아 길러온 기독영앙원은 회원단체의 도움이 완전히 끊기자 운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남중동 舊영아원을 매각, 이곳으로 이전했다.

 현재 1,840여평의 대지에 6동의 영아실을 마련, 보모 6명을 포함해 직원 12명이 이들 영아들의 모든 뒷바라지를 다하고 있다.

 생후 1살부터 5살까지의 영아들을 부모대신 양육하는 기독영아원은 기아(棄兒)들이 대부분인데 부모가 생활고로 이혼한후 맡기는 어린이와 가정파탄, 혹은 미혼모들이 버린 영아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남의 집 문앞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그대로 버리고 자취를 감추면 핏덩이나 다름없는 어린 생명이 기독영아원에 오게된다고 한다.

 현재 56명이 수용되어 있는 기독영아원은 연만한 崔원장을 도와, 부인 金鳳順여사(김봉순·77)와 외동딸 崔讚英씨(최찬영·60) 崔원장의 동생 崔承右씨(최승우·62)와 그 부인 등 일가족 5명이 헌신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영아원으로 이름이 알려져있는데 중류가정집의 환경보다 더 알뜰히 꾸민 방과 오락실, 조리실과 간호원까지 두고 있다.

 “부모가 불안정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허약체질인데다 각종 질병까지 앓고 있는 어린이가 대부분”이라는 崔원장은 “이들 어린이들은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해주고 있으나 병이 심한 영아들이 많아 정부가 지정의사를 파견, 돌봐야 한다”고 아쉬움을 털어 놓는다.

 崔원장의 알뜰한 영아사회사업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으며, 지난 1970년 8월15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고 지난 1967년 제1회 裡里시민의 장을 받기도 했다.

 崔원장의 기독영아원은 설립후 오늘까지 입양 665명, 귀가 270명, 轉院(전원) 376명에 이르렀으며 정기건강진단을 받게한 숫자만도 작년 한해동안 모두 781명이나 된다.

 ‘극히 적은자에 대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는 성경구절을 가장 좋아한다는 崔원장은 “부모가 없는 이들 어린이들이 얼굴이 낯설은 손님이 오면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때 더 따뜻한 사랑을 베풀이 못하는 자신이 가장 가슴 아프다”며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늘 아쉬워하고 있다.

  
 김화담 記
 김재춘 옮김
 1989년3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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