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모의 딸을 상상해 본 초겨울의 쓸쓸함
비혼모의 딸을 상상해 본 초겨울의 쓸쓸함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12.02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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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혼모(非婚母)란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 기르는 여자를 말한다. 독신주의자이면서 애인과 정자은행을 통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는 현대판 신여성, 가부장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호적과 성을 사용한다.

  미혼모(未婚母)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낳은 여자를 말한다.

  지난달 4일 오전 일본에서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가 자발적 비혼모가 되었다는 방송보도를 들었다. 3.2kg 남자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 후 내가 만일 비혼모의 딸이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다.

  도시 숲에서 삶을 터득하는 즐거움으로 요즈음 시간을 줍는다. 지난봄, 한 알의 열매에서 돋아난 싹이 세상 바깥으로 나오는 연초록빛 생명이 떠오른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흙이 묻어 있는 열매를 보노라면 아마도 맘씨 고운 다람쥐나 산까치 때문에 얼굴을 세상에 내밀었을 게다.

  막 소란스러운 바깥세상의 빛을 보고 기지개를 켠 새싹은 맨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물을 빨아들일 뿌리를 만들어 땅속으로 몸을 비틀지 않을까. 새싹 얼굴을 초록으로 만들기 위해 새싹은 몸을 요리조리 뒤틀어 볼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린 새싹은 수많은 난관을 통과해야 산다.

  싹을 틔운 새싹이 맨 먼저 햇볕과 물을 찾아 생명을 유지하듯, 아니 그렇게 해야 산다는 지혜를 어미로부터 터득했을 터. 지난봄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듯 맨 먼저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방긋 웃는 아이는 계속 엄마 혼자만이 부모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가 왜 나는 존재하지 않는지를 고민할 사춘기에는 더 혼란스럽지 않을까 생각한다. 존재가 위태롭다고 느낄 때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순간 나는 비혼모의 딸이 아니기를 바랬다.

  마치 애완견을 맘대로 사들여서 즐기는 이웃집 여자가 떠올라서 고개를 흔들었다. 애완견은 주인이 잘해주면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아기는 주위 환경에 민감하며 정적인 생각과 동적인 외로움을 경험할 때 존재가치를 따지기도 할 것이다. 그냥 풍요롭게 엄마와 생활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 아니라는 혼돈의 가치는 아이에게 쓸쓸함과 절망감을 안겨 줄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는 정혜선은 “자기 존재가 주목받은 이후부터 진짜 내 삶이 시작된다. ‘나’가 희미해질수록 존재 증명을 위해 몸부림친다”라고 한다.

  학창 시절 도시락을 깜박 잊고 와서 점심시간에 운동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먼발치에서 아버지가 도시락을 들고 오시는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뿐이랴. 초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나의 과외선생님이셨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문제는 족집게처럼 꼭 시험에 출제되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 시에도 공부할 책을 손수 사주셨다. 어머니가 놓치고 지나가는 일에는 아버지가 챙겨주셨다. 한 번도 엄마 혼자만 있었으면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둥근 밥상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계셔야 가족이 다 모였다고 생각했다.

  긴 삶의 여정에서 사람은 가족을 떠날 수 없다. 가족은 유일한 나의 응원자다. 나의 상처를 맨 처음 알아보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가족이 삶의 중심부에서 나를 이끌어준다. 가족은 소중하며 내가 가장 비참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맨 먼저 달려오는 게 가족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나의 정체성에 방황할 때가 있다. 어머니가 나만 홀대할 때 친엄마를 의심하였다. 형제 중에 나만 대학 진학을 포기하라고 했을 때는 아버지를 미워했었다. 과연 나는 누구의 딸인가라는 심각한 생각을 할 때가 분명 있었다. 번개처럼 지나갔지만 아주 깊은 고뇌였었다.

  숲에서 짝짓기하는 새를 본다. 오래된 나무가 쓰러져 흙이 되어 가는데 그곳엔 작은 곤충들이 짝짓기 준비를 하느라고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파드득 나를 놀래도록 숲에 소리를 지르고 하늘로 오르는 새가 짝짓기에 성공했노라고 날개를 젓는다.

  나의 어머니가 비혼모라면 나는 어떠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위험한 생각이 겹쳐서 밀려오는 고요한 숲 속이었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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