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벌써 가을
10월 벌써 가을
  • 진영란 장승초 교사
  • 승인 2020.12.0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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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 하는 공부

 1. 선생님, 어디 가요? 밤 주우러 간다!

 “우리 밤 주우러 가요. 장화신고 텃밭 옆으로 오세요!”

 추석 연휴를 보내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반기는 달래의 메모다. 주말을 지내는 동안 텃밭 옆에 있는 커다란 밤나무에서 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학교가 쉬는 동안에는 동네 주민들이 주워가고, 오늘부터는 우리 아이들 차지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 밤을 주워보는 것이 낯설고 신기한 모양이다. 밤 밭 근처에서도 “뱀 나오잖아요. 거긴 벌이 있다고 했잖아요!” 안전 교육을 너무 잘 시킨 탓인지, 밤 줍기에 도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집게로 주우면 나처럼 잘 주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서로 집게로 줍겠다며 쟁탈전이 벌어졌다.

 유치원 때 밤을 주워봤던 상빈이랑 소율이는 열심히 줍고, 한 겨울에 장승초를 방문해서 벌레먹은 밤만 봤었던 영윤이는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밤을 줍는다며 제일 열심이다. 성묘하면서 밤을 주워봤다던 성주도 제법 잘 줍는다. 오늘은 밤을 따로 줍지 않고, 모두 한 바구니에 담았다. 20분 남짓 밤바구니가 묵직하다.

 

 2. 밤이 모두 몇 개야?

 교실로 돌아와서 밤이 몇 개나 될지 어림을 해 보았다. 쉬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밤으로 공부를 하기로 했다.

 

 각자 세고 싶은 만큼 밤을 가지고 갔다. 16개부터 47개까지 다양한 개수를 열심히 세어본다. 마구 세었다가 10개씩 묶어서 다시 세어봤다. 각자 밤의 숫자를 포스트잇에 적어 보았다. 이번에는 옆 친구와 책상을 붙여 보았다. 두 사람이 센 밤의 개수를 계산할 차례다. 수식을 쓸 수 있는 포스트잇을 나누어주자마자 아이들이 두 사람의 밤의 개수를 구하는 수식을 만들어 낸다. 공교롭게도 2팀은 받아 올림이 없는 덧셈이었고, 두 팀은 ‘47+17’, ‘16+26’로 받아 올림이 있는 수식이 만들어 졌다. 아이들은 손을 꼽았다 폈다, 눈을 왼쪽으로 굴렸다가 오른쪽으로 굴리면서 답을 알아낸다.

 우리 아이들이 밤으로 만든 수식은 다음과 같다.

 24+25=49

 51+31=82

 47+17=64

 16+26=42

 오늘 우리 아이들이 주운 밤은 ‘49+82+64+42=237’개다.

 

 3. 누가 더 많이 주웠지?이번에는 뺄셈 공부를 할 차례다. 24개를 센 윤우와 25개를 센 소율이는 누가 밤을 더 많이 주웠는지 비교하기가 쉽다. 그런데 그것을 수식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51개를 센 영윤이와, 31개를 센 상빈이는 잽싸기 더하기를 빼고, 뺄셈 기호를 써 넣는다. 둘의 차이를 비교할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각자 짝꿍이 센 것과 자기가 센 것을 비교하는 빼기 공부를 했다.

 

 4. 밤이 폭탄같이 생겼네!

 “그리기 노트를 가지고 오세요!”친구들과 밤 세기 공부한 것을 옮겨 적어보라고 할 참이었는데

 “밤 그려야죠?”자세히 관찰해서 그리기 공부로 스스로 전환한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을 따라서 밤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눈에 비친 밤은 ‘폭탄’같았나보다. 밤 꽁무니에 나 있는 꼬리가 다이너마이트의 도화선을 연상시킨 모양이다.

 

 줄무늬가 세로로 있다는 것도, 밤의 색깔이 다양한 갈색이라는 것도, 그리고 작은 구멍이 나 있다는 것도, 밤의 그림자를 자세히 관찰한 것도 오늘 처음이었을 것이다.

 “밤을 통에다가 구워주세요!”작년에 유치원 마당에서 군고구마통을 열심히 돌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는지 소율이가 밤을 구워달라고 한다. 오늘은 장작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내일 삶아먹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이 오늘 배운 표현>1. 밤이 폭탄 같아요.

 2. 추석에 밤이 떨어졌어요.

 3. 삶아서 먹을 거예요.

 밤을 잘 먹기는 하겠지? 삶은 밤은 뱀도 안 나오고, 벌도 없을테니 말이다.

 

 <마주이야기>  밤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영윤이가 그리기 노트를 번쩍 들고 말한다.

 “선생님! 다 그렸어요!”

 영윤이의 선이 시원시원하다. 나는 밤 윤곽을 이제 막 그리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영윤아! 대충대충 그리지 말고, 신중하게 그려.”

 영윤이가 자기 밤 그림을 보더니

 “선이 제 성격을 닮았어요. 급해요!”

 쿡! 웃음이 나온다.

 “그래? 그럼 영윤이가 그리고 있는 밤은 성격이 어떤 것 같아 보여?”

 “밤은 퍽퍽한 성격일 것 같아요. 먹으면 퍽퍽하잖아요!”

 “정말 기발하다. 영윤아!”

 “또 시 쓰라고 할라고 그러죠?”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돼. 나는 이렇게 썼는데! 영윤이가 한 말은 그냥 옮기면 시가 된다니까?”

 내가 그린 밤 그림 옆에 영윤이와의 대화를 적었다.

 영윤이는 시는 절대 안 쓰겠다고 선언을 하더니 2분도 안 되어서 이면지를 찾아서 시를 쓰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아이다.

진영란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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