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37) 클래식 기타 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37) 클래식 기타 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문화영 시인
  • 승인 2020.12.01 19: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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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시집가는 딸을 위해 남편이 축하 연주를 한다며 친구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나도 친구의 뒷자리에서 그날처럼 기대에 가득 차 앉아있었다.

 나와 친구는 고3 때 같은 반 짝궁이었다. 그 후로도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해 늘 붙어 다녔다. 서로 밥을 나눠 먹고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것은 들키고 싶지 않은 사이였다. 그런데 언제쯤이었을까? 나의 상처 난 가족사를 말해버렸던 때가. 아픔 없이 어른이 될 수 없는지 친구도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중이라고 했었다. 비밀을 털어낸 후 우린 서로에게 더 기대며 가까워졌었다.

 친구가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고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버스도 타지 않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거나 전시장을 기웃거리며 난해한 그림 앞에 멀뚱히 서 있곤 했었다.

 가을밤, 클래식 기타 정기 연주회의 밤.

 그날은 아버지가 집에 안 들어오신 지 열흘이 넘어가는 날이었다. 엄마의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었고 난 아버지에 대해 서운함을 넘어 화가 극도로 치밀고 있었다. 도청 고위직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두 집 생활이 알려질까 봐 무던히도 조심했다. 그런데 그때 여러 날 집을 비우고 있었다.

 의자에 푹 가라앉아 나는 친구의 듀엣 연주를 들었다. 두 사람이 튕기는 기타 줄은 하모니를 이루며 부드럽게 공중에서 엮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음률에 포근히 감싸인 채 나의 성난 마음은 서서히 누그러들고 있었다. 친구가 퇴장하고 마지막 순서로 그녀의 남자 친구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또로록 눈물이 흘러내리지 못하게 바람이 굴리고 있는 것 같은 소리, 떠나는 사람의 그림자에 살며시 마음을 포개는 것 같은 애잔함. 그리움으로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선율에 나는 사로잡혔다. 물결 같은 음악을 들으며 왜 아버지가 생각났을까? 되돌리고 싶은 아버지...

 벤치 위에다 당신의 손수건을 깔아놓고 나를 앉히던 아버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명화가 들어오면 내 손을 붙잡고 영화관에 가서는 졸던 아버지.

 연주가 끝나자 순서지를 보며 곡의 제목부터 찾았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마른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이방의 알함브라 궁전을 상상하며 얼마나 많이 멜로디를 흥얼거렸는지 모른다. 노을빛을 받아 붉어진 얼굴처럼 얼마나 내 마음이 환해졌었는지 모른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기 전까지.

 결혼식장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수런거렸다. 축하 연주를 시작하기 전, 딸의 결혼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매일 연습했다는 신부 아버지의 멘트에 식장은 조용해졌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옛날 친구와 내가 신부보다 어린 나이였을 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을 때처럼 첫 음에 매료되어 의자의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처럼, 식장의 모든 사람은 귀를 한 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떨림으로 속삭임으로 기타의 선율을 타고 천천히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신부는 신랑의 팔짱을 낀 채 연신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거처를 옮기신 아버지는 엄마 편을 드는 나를 대놓고 미워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고 장례식장에 오신 아버지 친구분들이 전해주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향해 리듬을 타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아버지의 빈자리에 차곡차곡 쌓인 것이 그리움이라는 것도. 아버지는 도돌이표도 없이 며칠 전 마침표를 찍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페이지에 자식을 위해 기도하듯이 극진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신부의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울고 있는 잘 자란 신부를 본다. 시할머니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랑을 지키며 살아온 친구의 등을 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홍안 청년의 모습을 기억하는 내게 남편의 헤성해진 머리를 염려하던 친구는 미동도 없이 앉아있다.

 그동안 잘 살았구나 친구야! 괜스레 눈물이 난다. 친구 남편이 연주하고 있는 아름다운 곡의 제목이 궁금해 가방을 뒤적거려 돋보기를 찾는다.

 

 글 = 문화영 시인

  

 ◆문화영

 2016년 <시에>로 등단했으며, 시집 <화장의 기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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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2020-12-08 01:43:50
오랜만에 느낀 감동이네요~ 표현하진 않았지만 사랑했다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합니다
하영희 2020-12-02 14:32:56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글입니다~글을 읽으며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잔잔히 전해져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