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최초, 최초
최초, 최초, 최초
  •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 승인 2020.11.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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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우리는 미국대통령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각 미디어에서는 개표방송을 생중계했고 주마다 다른 방식의 선거절차와 선거인단 수도 파악했고 어느 주는 트럼프가 우세하고 어느 주는 바이든이 우세한 것까지도 꿰뚫어 봤다. 선거 당일 밤이면 당선자 윤곽이 드러나고 승리선언까지 이어지던 모습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미국이라는 나라답지 않게 지지부진한 개표로 며칠을 넘기자 초반 열기와는 다르게 슬슬 피로감이 올라왔었다.

 대선이 치러진 지 20일이 지나서야 미국의 연방총무청은 ‘대통령직 인수·인계 법에 따라 오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을 확인했다’며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아직도 트럼프는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며 허풍을 떨고 있다. 아마 전세계 시민들은 이번 미국의 대선을 목도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민주주의를 허접하게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장면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당선자는 델라웨어주 윌밍턴 체이스센터 승리연설에서 “제가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첫 여성일지라도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오늘밤 모든 소녀들이 이 나라가 가능성의 나라임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어떤 젠더이든 야심을 가지고 꿈을 꾸게 했고 확신을 가지고 리드하도록 격려했다. 멋지고 감동적이어서 뭉클했다. 그날 입었던 흰색 정장은 여성참정권 운동의 상징인 ‘서프러제트 화이트’라며 전세계가 환호했다.

 대중들은 바이든 대통령당선자보다 해리스 부통령당선자에게 더 열광한다. 미디어에서는 ‘부통령선출이 대통령선출보다 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며 호들갑이다. 해리스에게는 ‘최초, 최초,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성이며 흑인이며 아시아계라는 삼중 장벽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을 딛고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우리도 ‘최초’라거나 ‘1호’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판사 1호, 여성검사장 1호, 최초의 여성비행사 등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남성의 영역에서 여성이 최초로 진출했다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2호로 연결되지 못하고 수식어에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동안 우리는 여성최초의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 수 많은 최초를 경험했다. 그런데 소수 여성들이 고위직에 진출한다고 모든 여성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도 많은 여성이 불안정한 노동지위 속에서 빈곤의 최전선에 내몰리는 현실은 여전했고, 정치인들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여성지도자들은 문제해결에 민감성을 갖지 못했다. 몇몇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어 내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최초나 1호의 여성들이 의미가 있으려면 자리에 올라 홀로 빛나기보다는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이 성차별적인 구조의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종종 고위직까지 오른 여성들이 개인의 능력과 피나는 노력의 결과임을 강조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는 여성에게 능력이나 노력은 무용지물일 때가 더 많다. 구조적인 장벽들을 제거해 안전한 사다리를 놓아 주는 역할이 병행될 때 드디어 1호는 완성될 것이다.

 다시 미국 대선으로 돌아와 호사가들은 4년 뒤 최초로 두 여성이 대선후보를 놓고 경쟁하지 않을까 예측하기도 한다. 카멀라 해리스와 미셸 오바마이다. 물론 미셸은 공직출마에 관심 없다고는 하지만 정치는 모를 일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이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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