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3) 박노해 시인의 ‘사랑은 불이어라’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3) 박노해 시인의 ‘사랑은 불이어라’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1.2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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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불이어라’
 

 - 박노해

 

 딸아 사랑은 불같은 것이란다

 높은 곳으로 타오르는 불같은 사랑

 그러니 네 사랑을 낮은 곳에 두어라

 아들아 사랑은 강물 같은 것이란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강물 같은 사랑

 그러니 네 눈물을 고귀한 곳에 두어라

 우리 사랑은 불처럼 위험하고

 강물처럼 슬픔 어린 것이란다

 나를 던져 온전히 불사르는 사랑

 나를 던져 남김없이 사라지는 사랑

 사랑은 대가도 없고 바람도 없고

 사랑은 상처 받고 무력한 것이지만

 모든 걸 다 가져도 사랑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사랑이 길이란다

 사랑이 힘이란다

 사랑이 전부란다

 언제까지나 네 가슴에

 사랑의 눈물이 마르지 않기를

 눈보라 치는 겨울 길에서도

 우리 사랑은 불이어라

 

 <해설>  

  경복궁역 근처에 라 카페가 있습니다. 거기 2층에는 박노해 사진전이 무료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내에 약속이 있을 땐 일부러 라 카페로 정합니다. 실내 장식이 강렬한 초록색으로 되어 있는 것도 이색적지만 2층에는 시인이 직접 티베트나 히말라야 같은 오지에서 찍은 흑백 사진들이 내 발길을 끌어당깁니다. 그 사진들 옆엔 시인이 쓴 시나 해설이 곁들여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안에 든 의미를 끊임없이 퍼 올리게 합니다. 

  시인의 시는 주제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단단하고 단아한 기품이 있어 경전을 읽을 때처럼 어수선 했던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면서 평화로워 집니다. 

  ‘진창 같은 인생에서도 부레옥잠을 키울 수 있는 박노해 시인. 빨래를 맑은 햇살에 깃발로 보는 시인의 눈빛은 ‘딸에게 사랑은 불같은 것이니, 낮은 곳에 두라 이르면서도 아들에게는 사랑은 강물 같은 것이니, 아래로 흐르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눈물은 아무 때나 흘리지 말고 가치 있고 참 된 일 앞에서 흘리라’고 당부하네요. 그렇습니다. 시인의 시처럼 ‘사랑은 불이기에 위험하지만 때로 강물처럼 슬픔어린’것입니다. 순수한 것일수록 힘이 강력하지만 반대로 치명적인 상처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너무도 순수한 것이기에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온전하게 지닐 수 없으며, 가꿀 수도 없다고 하네요. 

 아마 우리 인간이 지닌 주원료는 사랑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길을 갑니다. 오늘, 사랑 한번 새김해보면 어떨까요.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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