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수당 지급의 당위성
농민수당 지급의 당위성
  • 이종률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 승인 2020.11.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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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년 발간된 토마스 모어의 소설인 ‘유토피아’에는 도둑을 없애기 위해 도적질한 이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하는 것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소득을 나누어줘 도둑질할 이유가 없도록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최근 코로나19와 경기침침에 따른 기본소득 지급에 대한 고민은 이처럼 오래전부터 그 고민이 있어 왔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된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자녀가 어린 부모에게 지급하는 양육수당, 일자리가 없는 청년에게 지급하는 청년수당, 직업이 없는 성인에게 지급하는 실업수당, 고령자에게 지급하는 연금 등 생애 주기에 따라 촘촘하게 기초 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국가와 복지 여건이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기초노령연금 등 일부 현금성 복지 지원에 대해서만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아직 다른 부분에서는 여전히 그 지급 당위성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기본소득은 정부가 지급한 현금이 사회구성원의 판단에 의해 생계에 활용된다는 면에서 기존의 복지제도와 분명한 큰 차이가 있다. 

  기본소득에 대해 코로나 19 확산에 따라 세계적으로 그 논의와 실험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결과 개념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핵심적인 3가지는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이라고 한다. 보편성은 국민 또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지급되야 함을 의미하고, 무조건성은 특정한 요건을 갖추거나 행위를 해야 한다는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것이며, 개별성은 집단이나 가족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지급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시에 지급하지 않고 연금식으로 지급하는 것도 기본 소득의 주요 특징일 것이다. 이같은 특징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어떠한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지급하는 소득으로 정의할 수 있다. 

  경제학적 측면에서 정치란 희소한 재화를 국민에게 권위 있게 분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라의 귀한 재화를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쓰자는 의미이다. OECD가입국가 중 국민소득이 높은 수준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이 자연스럽게 논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최근 일부지자체단체는 어려운 농업인들을 고려해 농업인 기본소득제 도입을 약속한 바 있고, 일부 광역단체는 시군과 공동으로 재원을 확보해 농가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농업인에게 지급하고자 하는 소득은 앞서 언급한 기본소득의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전 사회구성원이 아닌 농업인이라는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이이에게만 지급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의 원칙에 어긋나며, 농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개인이 아니라 농가 단위로 지급된다는 측면에서 개별성의 원칙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즉 우리나라에서 도입할 예정이거나 도입을 검토하는 농업인 기본소득은 일반적인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농업인 기본소득이라고 하기보다는 ‘농민 수당’이라 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농업은 농산물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본원적 가치인 수자원 관리, 공기정화, 환경보전, 국토의 보전·관리 등의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농산물은 시장에서 판매돼 가치가 실현되지만, 그 밖의 본원적 가치는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그 가치를 농가에 지불하지 않고 있으며 당연시 여기고 있는 이것을 농업의 다원적 가치라 한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대해 정부나 지자체가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타당하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농업 직불제도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에 차별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불제는 경지면적에 비례하며, 축산은 대상으로 하지 않고, 국가 사업으로 지역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 직불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지역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 등에 초점을 맞춰 도입한다면, 농업인 수당이 적절한 지자체의 농업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인에게 농민수당을 지급해서라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앞서 언급한 농업이 가지는 공익적 성격 때문이다. 군대가 아무려 경제적 생산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방을 위해서 예산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농업은 본연의 공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영역이다.  

  물론 일부 농업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 못했던 분들은 코로나 19에 따른 경기침체로 농사꾼보다 장사꾼이 더 위기인데 왜 농민수당을 주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위드코로나 시대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안좋고 침체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상업의 위기는 적은 소비인구와 은퇴자와 실업자들의 부족한 일자리와 연결되어 있는 반면, 농민수당은 도시에서 이탈하여 농촌에 정착하는 귀농 자들이나 실업자와 은퇴자들에게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정착에 큰 도움이 되며 농촌으로 인구분산까지 유도하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지역화폐로 지급된 농민수당은 즉시 지역경제로 회귀한다. 하지만 지역의 대형마트나 아울렛등에서 구입한 물건은 즉시 그 타지, 즉 본사가 있는곳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지역의 중소 상인들과 재래시장에 직접 도움을 주기 때문에 지역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강화할 수 있다. 자금 유동성이 강화 되고 재래시장 방문횟수를 확대하여 추가적인 소비를 창출해 지역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소액의 농민수당으로 당장 지역 선순환 효과가 발현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우리 농촌이 인구소멸을 극복하고 농업인을 유지하고, 귀농귀촌을 지원하며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시키고자하는 방향성은 분명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민수당이 도덕적 해이나 남발식의 포퓰리즘을 조장하지 않고 우리 농촌, 농업, 농업인을 지키고 보호하는 가장 필요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되길 필자는 그 지급의 당위성을 피력해 본다.
 

 이종률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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