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금지법 개정안 찬반 논란
낙태 금지법 개정안 찬반 논란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0.11.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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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 금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작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관련 법을 조속히 개정할 것을 명령하면서 입법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현행 형법 ‘제269조(낙태)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1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말인 12월 31일까지 개정안을 발표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낙태죄 비범죄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1년 6개월 만인 지난 10월, 임신 14주 이내일 경우에만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임신 15-24주 내일 경우에는 ‘조건부 허용한다는 내용의 입법예고안’을 발표했다. 24주까지 임신 중지가 가능한 조건부 내용은 유전병이 확인된 경우, 기타 질환으로 임신 유지가 산모의 생명과 건강상에 큰 문제를 가져올 경우, 근친상간이나 성범죄에 의한 임신 등이며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도 낙태를 가능하게 형법·모자보건법·약사법의 개정안을 발표했다.

 한편 이러한 낙태죄를 존치하고, 대신 처벌요건을 완화하는 이번 낙태죄 개정안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개정안은 그간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며 “지난 8월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낙태죄를 비범죄화하고,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을 보장하는 법 개정을 법무부에 권고한 것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라 비판했다. 이어 “원치 않는 임신·출산으로부터 안전한 임신중단을 원하는 당사자 여성의 목소리와 낙태죄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국민 인식 변화에도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라며 “낙태 처벌보다 임신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지원과 보호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국제적 동향에도 반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완전한 낙태죄의 폐지는 민주당 일부와 정의당과 진보적인 여성단체, 민변 등이 주장하고 있고 현재 개정안 반대와 완전한 낙태죄 폐지를 위한 거리 투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전국 174인의 여성 교수 일동’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우리 여성 교수들은 보건복지부의 낙태 일부 허용의 입법 추진을 강력히 반대한다.”라며 “태아는 여성의 신체 일부가 아닌 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생명권을 가진 독립된 생명체이고, 우리도 한때는 태아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안은 낙태 허용범위를 심각하게 확대했는데 대부분의 낙태가 12주 안에 이뤄지는 점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모든 낙태를 허용하는 셈”이라며 “태아의 생명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보수 정치권과 교리상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천주교와 대부분의 종교계 역시 이번 개정안을 반대하고 낙태죄의 존속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미 헌재의 결정을 바꿀 수 없어 개정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상담 및 24시간 숙려 의무를 둔 것과 “의사의 임신 중지 시술 거부권을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명시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상담과 숙려기간이 ‘임신 중지 시기를 늦춰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라는 주장이고, 의사의 중지 시술 거부권 역시 진료 거부를 금지하는 의료법과 충돌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민단체나 정치권의 반응과 달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낙태(임신 중단) 죄를 유지하면서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낙태법 개정안 추진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4개사가 지난달 벌인 여론조사에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낙태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응답자의 56%가 낙태법 개정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21%,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낙태를 허용하면 안 된다.’라는 의견이 19%로 뒤를 이었다. 성별, 나이별, 이념성향별 등 모든 분류에서 ‘낙태죄 유지, 제한적 낙태허용’이라는 정부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성과 여성은 각 56%와 55%, 연령별로는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에서, 이념성향별에서는 진보·중도·보수 할 것 없이 모두 50% 이상의 비율로 정부안을 지지했다. 다만 70세 이상 층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면 안 된다는 응답이 42%로, 제한적 허용 33%, 전면 허용 14%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현실은 낙태에 대한 이념적, 종교적, 성 평등적인 논란과 상관없이 그동안 낙태 시술이 공공연하게 관행적으로 시행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어떤 강력한 법도 저마다 사연을 가진 낙태를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뒷골목 나태’처럼 여성의 건강을 해치고 범법자로 만드는 부작용만을 만들어 온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현실적인 법 개정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전면폐지를 주장하는 쪽의 ‘여성의 자기 결정권 보장’도, 낙태죄 존속을 주장하는 쪽의 ‘태아의 생명권보장과 생명존중’도 모두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과연 이 문제를 최종으로 풀어가야 할 국회가 어떤 혜안을 만들어 낼지, 탁월한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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