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2) 이철경 시인의 ‘언 강’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32) 이철경 시인의 ‘언 강’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1.22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 강’
 

 - 이철경
 

 

 눈 덮인 북한강 서성이다

 저 강 너머

 나루터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언제면 데리러 올까

 기다리던 작은 아이,

 

 바람의 위안에 눈물 흘리던

 유년의 차가운 윗목

 

 <해설>  

 겨울이면 청둥오리 날아오르고 앙상한 미루나무가 윙윙거리며 울던 옛적의 겨울은 왜 그토록 추웠을까요. 산 위에서 휘돌아 내려온 찬바람은 흐르던 물도 얼리고 앙상한 나무들도 시퍼렇게 질려 띄엄띄엄 서 있는 겨울. 북한강도 깊은 겨울잠에 든 듯 두꺼운 얼음을 뒤집어쓰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겠지요. 

 언 강에 눈이 내려 수북이 쌓여 마치 시베리아 벌판처럼 더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겨울 속의 강. 강이 얼어 나룻배가 다닐 수도 없는 북한강 가에 서서, 강 너머 멀리 읍내 쪽으로 난 둑길을 바라보는 작은 아이가 눈에 밟히는 저녁 입니다. 작은 아이에게 오겠다고 약속했던 그 사람은 오지 않았나 봅니다. 그 사람은 몸이라도 몹시 아파 올 수 없었을까요. 무섭도록 추운 날에 작은 아이 혼자서 언 강을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자기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겠지요. 약속을 믿었던 허망한 유년의 기억이 지금도 차가운 윗목에 그리움으로 남아 가끔씩 시인에게 한기를 몰고 와 시를 쓰게 하겠지요.  

 겨울이면 청둥오리 떼가 떼를 지어 서쪽으로 날던 그 시절은 하도 외풍이 심해 방안에서도 문풍지가 울고, 물그릇을 윗목에 갖다 놓으면 살얼음이 얼기도 했었지요. 그런 겨울을 어린 아이가 몇 번이나 더 보냈을까요. 생각만 해도 그리움이란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기에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그러나 언 강 앞에 서있는 작은 아이는 끝까지 자기를 데리러 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렸겠지요. 살다 보면 고통에 눈물 흘리고 있을 시간에도, 막막한 공포의 순간에도, 봄바람은 불어오고 꽃은 어둠을 넘어서 피어나니까요.
 

 강민숙 시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