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호남 오페라단 제49회 정기공연을 보고’ 감격의 무대 <카르멘>을 전주에서 만나다
[리뷰] ‘호남 오페라단 제49회 정기공연을 보고’ 감격의 무대 <카르멘>을 전주에서 만나다
  • 백학기 시인, 영화감독
  • 승인 2020.11.12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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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격의 무대였다. 돈 호세가 미친 듯이 마지막으로 묻는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오?” 그러자 카르멘이 돈 호세가 줬던 반지를 무대 바닥에 내던진다. 사랑의 증표인 반지를 버리는 카르멘에게 달려드는 돈 호세가 그녀를 칼로 찌른다.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가 사랑을 가득 담고 바라보는 것을’ 합창 소리가 무대에 울려퍼지고, 절규하는 돈 호세. “내가 그녀를 죽였소. 카르멘. 나의 사랑하는 카르멘.”

 지난 6일과 7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펼쳐진 (사)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의 제49회 정기공연 <카르멘>은 코로나의 환경 속에서도 청정 전북의 저력을 보여주듯 한 자리 띄어 앉기와 마스크 착용 등 불편한 가운데서도 관객들은 숨죽여 오페라의 감동과 환희를 만끽했다.

 ‘카르멘’ 역의 최승현은 지난 해 <일트로바트레> 정기 공연에 이어 올해 호남오페라단과 다시 또 호흡을 맞춰 탁월한 노래와 연기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유감없이 받았으며, 돈 호세 역의 한윤석은 다수의 국내외 오페라에서 테너 주역으로 활동한 기량을 유감없이 이날 공연무대에서 선보였다.

 주지하다시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팜므 파탈 카르멘이 남자를 유혹하여 사랑을 나누고 결국에는 사랑의 배신과 집착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는 프랑스 대표적 오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 오페라이면서도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주연인 카르멘과 호세, 조연인 에스카미요(투우사)와 미카엘라(시골처녀)라는 극중 인물을 통해 사랑과 욕망을 변주하고 조율하는 스토리와 서사가 탄탄한 오페라다.

 카르멘은 첫 등장부터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아리아 ‘하바네라’를 부르며 무대 뒤에서 전면으로 나타나는 카르멘은 반짝이는 검은 눈과 붉은 입술, 화려한 의상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진한 향수와 같고, 매혹적인 음성에 얹힌 섬세한 카르멘의 연기는 숨가쁠 정도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 카르멘의 유혹에 넘어가는 돈 호세의 리액션 연기도 멋지게 무대 위를 수놓는다.

 스페인 최고의 투우사로 나오는 에스카미요 역의 이규봉 또한 지난해 정기공연 <일트로바트레>에 이어 다시 올해 무대에서도 역량을 과시했으며, 시골 처녀 미카엘라 역의 소프라노 윤정난도 해외공연 경험이 풍부한 재능을 맘껏 뽐내 관객들의 심금을 사로잡았다.

 이번 공연에는 또 호남오페라단과 처음 인연을 맺은 프라스퀴타역의 김리라는 프랑스 유학을 통해 닦은 탁월한 실력을 뽐내 중창에서 노래와 연기 모든 면에서 관객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으며, 주니가역의 베이스 김대엽의 폭넓고 중후한 목소리는 관객을 압도하였다. 단카이로역의 박세훈은 배역에 몰입한 완벽한 역할을 보여주었으며, 이태리 유학 후 귀국 첫 무대에 선 모랄레스 역의 조지훈 또한 앞으로 기대되는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번 <카르멘>의 무대디자인은 이탈리아 오페라 전문 무대디자이너 G.Vaccari의 솜씨로 다져진 무대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던하고 심플하게 세련된 점이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문화의 도시 전주를 대표하는 전주시립교향악단과 전주시립합창단, 김하정 단장이 이끄는 국립발레단 출신의 ‘나라 발레 씨어터’의 발레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발레로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았으며, 전주소년 소녀 합창단의 귀여운 앙상블은 호남오페라단이 이번 정기 공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전북무대에서 올려진 최고 수준의 오페라 카르멘! 이제 내년 2021년에는 사람으로 치면 지천명에 이르는 호남오페라단이 어떤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일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 백학기(시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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