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의 안내 글
사람 중심의 안내 글
  • 박은숙 원광대 사범대학 교수
  • 승인 2020.11.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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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글을 보면 그 지역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공원에 안내표지가 많을수록 그 지역의 문화 수준을 낮게 평가한다고 한다. 안내 글이나 안내표지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꼭 필요하고 적절한 것, 둘째는 필요하지만 허술한 것, 셋째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필요하고 적절한 안내 글이나 안내표지로는 도로의 신호등, 대형건물 로비의 층별 안내도, 대형병원 복도 바닥의 검사실 등을 안내하는 색깔별 테이프를 예로 들 수 있다.

필요하지만 허술한 안내표지에 대한 경험을 말하고 싶다. 1년을 마무리하는 세미나를 원만하게 마친 가을 오후였다. 그동안 고생했으므로 우리 팀은 휴식이 필요했다. 귀갓길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나무숲 공원에 들렀다. 1박2일 촬영지라는 안내 글은 이곳이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곳인가를 증명하고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간 적도 있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키 큰 대나무숲에 들어서자마자 힐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대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아래에서 꿀맛 같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떡갈비와 대통밥을 예약한 시간에 맞춰 공원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그러나 입구로 향하는 쪽에는 출구를 가리키는 안내표지가 없었다. 두 갈래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했고, 세 갈래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입구와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어둠과 함께 공원에는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으나, 내일 아침 9시에나 통화가 가능했다. 어린 자녀를 둔 연구원은 시간에 맞춰 귀가해야 했다. 밝은 달빛이 비치는 대나무 숲에서 길을 잃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한참을 헤매다 멀리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한적한 곳에서 한 쌍의 젊은이가 다정하게 앉아 소곤대는 소리였다. 데이트를 방해하지 말자는 의견과 조난 상황이므로 길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우리는 결국 그들의 데이트를 방해하고서야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젊은이들의 데이트를 방해했다는 미안함이 있다. 시내의 불빛이 환히 보이는데도 c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 유명한 공원에는 올라가는 길뿐 아니라, 내려오는 길에도 안내표지를 세워두어야 했다.

다음은 필요하지 않은 안내 글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공중화장실에는 언제부터인가 ‘휴지는 변기에 버리세요’,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세요’, ‘물은 3초 동안 꾸욱 누르세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릅답습니다’ 등의 친절한 안내 글이 많이 붙어 있다. 외국에 가서 그 나라 언어를 몰라서 공중전화를 사용치 못했다는 지인들이 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 우리나라 화장실에 들어가면 당황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화장실 부착물은 위생 면에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하여 위생을 철저히 해야 하는 컨데믹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화장실의 친절한 안내 글이 과연 필요한지 우리가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매우 잘 조성된 공원에 들어가면 ‘법을 위반하면 벌금이 얼마’이고, ‘강아지와의 산책은 금지’하며, ‘차량 진입 금지’ 등의 안내 글이 붙어 있다. 안내 글을 읽어야만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진 않은지 염려스럽다. 우리 주변에 있는 안내 글이나 안내표지가 꼭 필요한 것인지, 불필요한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 필요한 것이라면 적절하게 안내를 하고 있는지, 필요하지만 허술하게 안내를 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의 품격은 사람이 지켜줘야 한다.

  박은숙 <원광대 사범대학 교수 / 원광대 시민교육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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