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 배향하는 전북 서원 4곳..위상과 문화재적 가치 명확한 규명 한목소리
황희 정승 배향하는 전북 서원 4곳..위상과 문화재적 가치 명확한 규명 한목소리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11.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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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방촌학술대회
제6회 방촌학술대회
제6회 방촌학술대회

 방촌 황희(1363~1452)를 주벽(主壁)으로 모신 전라북도의 서원 4곳에 대한 위상과 문화재적 가치를 규명하는 학술대회가 완주에서 열려 주목됐다.

조선 건국의 기초와 태평성대를 이룬 위대한 정승으로 꼽히는 등 너무도 잘 알려진 황희 정승이지만, 지금까지 황희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 방촌 서원 가운데 사액서원(賜額書院)인 상주의 옥동서원에 비해 다른 사원들은 연구나 활용, 관심도 등의 측면에서 떨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사)방촌황희연구원(이사장 황의옥)이 주최하고, 부설 방촌황희연구소(소장 최영찬)이 주관해 7일 완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6회 방촌학술대회’가 주목된 이유였다.

 ‘방촌 황희와 향사 서원들’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방촌을 주벽으로 한 전라북도 서원들의 설립 취지와 의의를 밝혔다.

 이날에는 완주 용진서원, 남원 풍계서원, 장수 창계서원, 진안 화산서원 등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두루 살폈다.

 용진서원에 대해 발표한 한문종 전북대 교수는 “용진서원의 배향인물 중 황희와 황수신은 조선시대 최고의 관직이라 할 수 있는 영의정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이 지방의 유학과 향풍의 진작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관련 자료들이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박 교수는 “용진서원 뿐아니라 완주지방에 존재하고 있는 서원, 사우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현판을 조사 정리해 관련 인물들의 인적 네트워크와 당호 및 건축물의 명칭과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박 교수는 구억마을 안에 용진서원 부속 열성공부조묘가 1983년 6월 경기고 고양군 금승리 선산 옆으로 옮겨진 점을 들어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옮겨와 지위를 되찾는 방안과 황희의 5대손인 문절공 황락의 부인 안동김씨 정녀각을 보수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작업이 행해지면 용진서원과 열성공부조묘, 열녀문을 묶어 충과 절을 교육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의 발표를 통해서는 황희 정승을 중심으로 각 서원의 특성도 파악할 수 있었다.

 윤상원 전북대 교수는 “진안 화산서원은 경북 상주에서 이주한 장수 황씨 가문이 자신들의 시조를 배향해 제사를 지내고 진안 지방의 유생들을 교육했던 곳으로, 조선 후기 향촌질서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사당에 봉안되어 있는 ‘황방촌 영정’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일 뿐 아니라 황희 선생 국가 표준 영정으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고 평가했다.

제6회 방촌학술대회
제6회 방촌학술대회

 하태규 전북대 교수는 장수 창계서원 설립의 의의에 대해서 “장수는 방촌 황희의 본관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황희가 장수에서 태어난 것이라든가, 장수에 유배와서 우거하였다고 인식하고, 황희가 장수와 깊은 연고가 있는 훌륭한 인물이라고 인식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남원 풍계서원을 연구한 이선아 전북대 이재연구소 교수는 “옥동서원과 거의 동시에 호남의 창계서원도 청액을 위한 모금 활동을 했지만, 상주와 장수 두 곳 모두 사액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방촌 서원의 사액을 위해 결집했던 호남의 사족은 비록 창계서원 사액을 포기했지만 황희를 배향하는 사우를 건립하는데 뜻과 힘을 모아 1788년에 남원에 풍계서원이 건립됐다”고 의미를 더했다.

 이처럼 이들 서원은 지역의 대표적 서원으로 지역사회 유림의 존재 양상과 동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적이지만, 대부분 건립 경위나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황희 향사 서원의 역사와 현황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배향인물을 중심으로도 거시적, 미시적인 관점으로 분석하는 후속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선아 교수도 “흥미롭게도 풍계서원의 원임과 서원지 편찬위원 가운데 간재 문인이 참여하고 있는 점이 확인됐다”면서 “1908년 풍계사 복설에 참여한 157명과 1964년에 조직한 창덕계원을 분석하면, 남원의 풍계서원을 중심으로 ‘임순남’ 등 호남지역의 유림의 활동 양상과 그 의미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황의옥 이사장은 “그동안 우리 교육이 인문학에 너무 소홀했다 해서 최근에 인문학 쪽에 관심들을 많이 갖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로 향교나 서원을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학술대회는 방촌의 사상과 철학을 연구해 방촌의 고귀한 가치를 우리 삶 속에 심어 보고자 하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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