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검사
죄수와 검사
  • 최정호 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 승인 2020.10.2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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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죄수의 옥중 서신이 큰 물의를 가져오고 있다. 판단이 서로 달라 그 진위는 둘째치고. 의미를 해석하는 기준이 다르다. 국정감사에 불려나온 검찰총장은 볼멘소리로 ‘사기꾼’의 편지에 넘어간 여당을 비난한다.

 TV에 나오는 여야의원들의 격돌을 보면서 ‘스탠퍼드의 교도소 실험’이 생각나서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0여 년전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교수 필립 짐바르도는 심리학 실험을 했다. 백인 대학생 24명을 나눠 반은 교도관으로 나머지 12명은 수감자로 나누어 임의로 분류하여 그들의 행동을 연구했다.

 교도관의 임무는 1. 교도소 내 질서유지. 2. 수감자들이 탈옥하지 못하도록 감시. 3. 무엇보다 수감자들이 진짜 감옥에 있는 것과 같은 심리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교도관들은 자발적으로 17조항의 규칙을 만들어 이를 시행했다. 똑같이 일당 15불을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이었지만 그들 사이 즉 수감자와 교도관들 사이에서 역할에 따라 말투나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5일차에 들어서는 성적학대를 포함한 고문과 가혹행위가 관찰되었고, 수감자들은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무력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힌 상태가 되어 원래 2주간의 실험을 목표로 하였으나 중도포기하고 실험을 끝내게 되었다. 이 실험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이다. 우리는 이를 술자리에서 ‘직업병’이라고 간단히 말하기도 한다.

 요즈음 의사들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나는 ‘의사’아닌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마도 대부분 의사들이 그러할 것이다. 이 또한 요즈음 비판이 되고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더라도 의사 자격증을 박탈하지 않는 것은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다.) 그러므로 나도 뼛속 깊이 직업병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한 번도 치료된 적이 없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나만 그럴까? 아니다.

 생각해 보면 장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는 사람이면 자신도 그 직업병을 앓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술자리에 동석한 검사나 공무원들이 특별히 부패한 사람인가? 다른 검사나 판사들은 그러한 술자리 경험이 없을까? 죄수와 검사는 원래 다른 사람인가? 나는 가끔 의사와 환자가 다른 사람인가? 하고 자문한다. 그냥 하는 역할이 다를 뿐이다. 마치 스탠퍼드의 교도소 실험처럼! 우리는 어느 시점에 역할이 주어진 연극의 배우가 아닐까? 우리는 교도관처럼 폭력적으로 변하고 수감자처럼 수동적으로 변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러면 인간은 배역만이 주어질 뿐 본질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단견일까? 어느 야당 국회의원이 검사와 수감자를 비교하면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기꾼의 편지라고 힐난한다.

 과연 그러한 예단은 정당한 합리적 추론인가? 나는 그 순간 마음속에 “누가 더 사기꾼인지 모르겠군?”라는 의심이 일었다. 검사와 죄수는 다른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그 편지는 어떤 편지보다 진실을 품고 있는 스모킹 건이 될지 아니면 그들의 바람대로 사기꾼의 거짓이 될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말이 트집잡혀 국감장이 소란스러워 졌다. 말과 단어는 현실에 부합한다 즉 일대일 대응관계에 있다는 이론이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이론이다. 그는 이 이론이 가진 맹점을 파악하고 이를 철회했다.

 즉 언어는 세계를 다 표현하지 못한다. 그가 부하가 아니다란 말을 사용했을 때 그의 의도는 그를 비난한 사람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의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어떤 여권의원의 말대로 ‘무인지하 만인지상’을 표현했는지, 아니면 본인이 과거에 언급했듯이 “검찰 제일주의”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누구의 부하가 아니란 말로 검찰의 독립 즉 어떤 지휘도 감독도 받지 않는 존재임을 천명한 셈이니 정부의 두목인 대통령은 숙고해야 할 일이 되었다. 검사, 검찰이 풍기는 특별한 감각은 그 직업적 특권에 의지한 것이다. 대통령도 끌어내리고,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는 검사들의 전성시대는 이미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그들과 그들에게 기생하는 자들만이 아쉬워하며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다. 앙시안레짐은 스스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대체세력의 배웅이 필요할 것이다.

 최정호<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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