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자궁은 공공재인가?
여성의 자궁은 공공재인가?
  •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 승인 2020.10.28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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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는 작년 4월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이 결정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재생산권에 대한 한걸음 진전을 이루어 낸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헌재결정 후 1년 6개월이 지난 10월 7일 정부가 ‘헌재결정의 취지에 따라 기간과 사회경제적 사유 등을 근거로 ‘조건부 낙태허용’이라는 방향의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우리 사회는 다시 낙태죄에 대한 배틀그라운드가 시작되었다.

 1953년부터 형법의 낙태죄에 관한 조항이 존치됐음에도 한동안 크게 문제되지 않았었다. ‘둘도 많다’는 정부의 인구정책 슬로건 아래서 공공연히 낙태가 이루어졌고 의사들은 공조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아선호사상은 성감별 후 여아 낙태를 묵인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도 팽배했었다.

 낙태죄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것은 2010년 즈음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낙태 단속을 정부에 요구하며 시술하는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죄에 대한 찬반논쟁은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저출산문제가 심각해지며 정부의 인구정책 또한 ‘아이 낳아 애국하자’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정부정책에 따라 낙태는 박수를 받기도 했고 범죄가 되기도 한다.

 충분한 정보를 기반으로 환자를 위하고 환자중심의 의료행위가 이루어졌음에도 범죄가 되는 것은 낙태시술 뿐일 것이다. 현행법에서는 임신중단을 결정한 사람과 임신중단을 돕는 사람이 모두 처벌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낙태죄로 여성과 의사가 처벌받는 사이 임신의 공범인 남성의 책임을 묻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며 낙태를 종용하기도 하고 임신중단시술 특성상 아는 사람이 제한적임에도 여성에게 앙갚음하듯 고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낙태죄 처벌이 혹여 남성들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임신중단은 여성의 무책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계획되지 않았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여러 가지 고충을 고려한 결정이다. 임신중단으로 죄책감 등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거나 후유증으로 몸이 망가져 가장 심하게 타격받는 사람은 바로 여성 자신이다. 커다란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임신중단을 결정하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이다.

 낙태죄로 처벌한다고 해서 결코 임신중단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단지 음성화될 뿐이다. 음성화된 시술은 여성의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여성들은 적은 비용으로 비위생적이고 질이 낮은 시술을 받거나 위험수당까지 지불해가며 고비용 불법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낙태죄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실효적 수단이기보다는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을 더욱 어려운 환경으로 내몰 뿐이다.

 낙태죄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명분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이다. 그러나 임신중단시술이 가능한 기간이 정해지고 사회경제적 사유로 조건부 낙태허용이 된다는 점은 생명권 보호라는 명분과도 거리가 멀다. 특히 장애 등 우생학적 유전학적 근거에 따른 낙태허용은 더욱 그렇다.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낙태가 불가피한 사람’이라는 허락이 아니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에 대한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는 임신중단을 위법여부로 판단하지 않고 임신중단시술을 의료행위 범주에 포함시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시술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여성의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도 이제 시대의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평생 원치 않는 임신으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위험이 없는 몸을 가진 사람들만이 낙태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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