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32> 전주달빛
[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 <32> 전주달빛
  • 서철원 소설가
  • 승인 2020.10.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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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전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있다. 바로 <전주달빛>이다. 평범하면서도 전주의 내면을 읊조리듯 이 노래는 한동안 전주 사람들에 의해 불리어졌다.

 전주를 비롯해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듀오 ‘노스텔지어’가 부른 <전주 달빛>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전주의 풍광을 노랫말로 삼았다.

 

 전주 달빛 아래 아름다운 보라의 향기 있어

 오늘 나는 천년의 기억 너에게 보낸다

 여기는 별무리 지는 작은 골목 느린 자만재길

 너의 향기 그리워 오늘도 이 길에 서 있어

 너의 목소리 그리운 이 길에 추억이 남아

 다시 너와 함께 이 거리를 거닐 수 있다면

 다시 너와 함께 이 거리를 거닐 수 있다면

 어제처럼 너와 함께 눈을 뜨는 아침엔

 꿈속으로 이어지던 푸른 도시를 바라봐

 전주 달빛 아래

 전주 달빛 아래 아름다운 보라의 향기 있어

 바람에 실려 너에게로 떠나는 여긴 한옥마을

 너와 함께 걷던 느린 골목길 비 내리던 전주

 너와 함께 걷던 느린 골목길 눈 내리던 전주

 아, 다시 너에게로

 아, 다시 너와 함께~

 

 지금은 들을 수 없는 <전주 달빛>.

 이 노래가 불리던 시절만 해도 언더그라운드에서의 뮤지션들이 지낼만했다. 특히 올해는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대개의 문화 활동이 쉬고 있다. 사람들 사이 거칠고 황량한 사막 가운데 움트는 풀싹처럼 서로는 서로에게 연민만 보낼 뿐이다.

 한 때 난무처럼 이어지던 ‘노스텔지어’의 음악 공연도 지금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모든 예술 활동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타자’로 이어지지만, 노래가 끊긴 도시는 적막하기만 하다.

 그때의 뮤지션들이 남긴 노래의 흔적은 추억처럼 전주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다.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되는 날 다시 ‘노스텔지어’의 노래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절 그때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노래는 여전히 전주에 남아 있다. 전주를 고향으로 한 <달빛 전주>는 전주의 별과 바람과 물과 산과 꽃들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전주 달빛>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 태어난 곳을 잊지 못하는 비망의 정한은 먼 기다림 끝에 다시금 불리워지게 마련이다. 이제쯤 추억의 숨결로, 뼛속 깊이 내려앉은 감성으로부터 그날을 기억하는 <전주 달빛>은 그 존재만으로 귀한 역사로 남는다. 이제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는지, 그대들에게 물어본다.

 

 애닯다 마시라.

 이 삶이 가혹하며, 저 죽음이 서러운지를,

 그 너머 당신들의 유토피아는 저문 뒤 더 아름다울까?

 오직 나로부터 이 노래는 불리워지길,

 별이 기울고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스치는 동안

 당신들의 용기와 참회를 이 노래는 말해줄까?

 

 어느 시인이 쓰다만 글귀에는 <전주 달빛>을 품은 상흔의 여린 자국들이 긴 강을 내며 가슴 한곳으로 밀려든다. ‘푸른 도시’로 명명되는 전주의 언저리에는 아직도 꿈속을 서성이는 추억의 잔해들이 꿈속 같은 전주의 풍광을 안고 긴 울타리로 둘레를 이룬다. ‘자만재길’과 보라의 향기가 떨어지는 ‘한옥마을’에도 새로워지거나 이질화된 ‘다른 공간’의 역사가 내재한다.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문, 풍패지관, 동문길로 분할된 전주의 공간에서 찾아낼 수 있는 추억의 가치는 전주 사람들이 살아온 내력이 말해준다. 가끔 지나쳐간 시간을 찾아 홀로 슬로시티를 방황하는 것도 당신만의 시간여행을 위한 한 가지 희망은 아닐까?

 이제는 그 오래전 향수로 남은 노래 한 소설 위로 흰 눈이 내리는 날만 남았다.

 

 글 = 서철원 소설가

 

 ◆서철원

 문학박사. 장편소설 ‘왕의 초상’, ‘혼,백’, ‘최후의 만찬’, 소설집 ‘함양, 원스 어폰 어 타임’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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