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얼굴] <81> 申東義씨(신동의)...체육회 사무국장으로 내정
[자랑스런 얼굴] <81> 申東義씨(신동의)...체육회 사무국장으로 내정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10.31 0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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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全北의 간판 이제는 指導者로

“스포츠의 페어 플레이 정신이 사회 정화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1964년 ‘東京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아깝게 메달을 놓친 申東義씨(신동의·50·전주시 삼천동 1가 585)가 오랜만에 외도(?) 생활을 청산, 全北체육회 임원의 한사람으로 복귀하면서 담담히 소감을 말한다.

 1959년 전주고를 졸업한뒤 전북대 법대에 진학, 4년간 장학생으로 면학에도 열중했으며 씨름, 레슬링선수로도 활약한 향토를 빛낸 체육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타고난 다부진 체격의 이점을 살려 대학1년부터 씨름을 시작한 申씨는 레슬링도 겸해 지난 1962년 全北大 대표로 대구서 열린 全國체전에 출전, 단체 우승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이때부터 레슬링 웰터급에서 국가대표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히며 국내대회를 석권했고, 동경올림픽에도 출전했으나 분패했다.

 그뒤 지난 1979년부터 全州씨름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全北씨름을 혼자 육성, 오늘의 대학씨름부가 전국 정상까지 오르도록 한 숨은 공로자이다.

 그뒤 체육계를 떠나 주택공사, 백화점 이사등을 거치면서 한시도 全北체육의 발전을 잊어 본적이 없다는 申씨는 ‘의리와 뚝심’의 인정많은 사나이로 동료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직접 코치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함께 뛴 동료나 후배선수 중 국가대표 선수를 지낸 金영준(주택공사) 白승연(주택공사) 柳인탁(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선·후배선수들과 지금도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때 좌절과 살의의 역경을 딛고 다시 체육계 일선에 나온 申씨는 “과거 경기 경력을 십분 활용, 全北 선수육성에 밑거름이 되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글 김화담·사진 공호택
 옮긴이 김재춘
 1989년 3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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