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8) 김기택 시인의 ‘소’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8) 김기택 시인의 ‘소’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0.2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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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해설>  

 올해는 유난히 길었던 장마로 인해 강이 범람하여 산이 무너지고 삶의 터전을 덮쳐서 많은 이재민이 생겼다고 합니다. 홍수로 차오른 물을 헤엄쳐 지붕 위나 산속 절간으로 가는 소를 보면서 느려터진 줄만 알았던 소가 날렵하다는 사실과 지혜로운 행동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십 여 년 전, 저는 몽골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 몇 년간 현대시를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시는 ‘모국어로 빚으라’는 말도 있지만, 그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몽골 대학생들이 김기택 시인의 시 「소」를 제대로 이해하여 그 의미까지도 온전히 새겼습니다. 

 우리는 그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랑한다는 말은 쉽게 못하지만, 그 사람의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의 눈동자는 소의 눈망울처럼 맑고 순수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소의 말은 귀가 있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소가 가진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지만,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는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 봐도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순하고 동그란 감옥 안에 갇혀 있기만 합니다. 누가 저 감옥의 벽을 넘어가서 소의 말을 꺼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우리 옛말에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조상들이 왜 소를 부려먹으면서도 떠받들고 살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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