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노벨상 취소 공작’이 떠오르는 이유
‘DJ 노벨상 취소 공작’이 떠오르는 이유
  •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 승인 2020.10.22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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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세모에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만나지 않으면 병(病)이라도 날 만큼 정 많은 우리의 대면문화(對面文化)는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방역 수칙 앞에서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이러한 불편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우리는 “K-방역”의 모범국가로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K-방역은 신속한 정보 공개를 통한 투명성, ‘검사-추적-치료로 상징되는 개방성, 높은 시민의식과 자발적 참여 등을 특징으로 한다. 즉,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통제와 소통의 조화, 확진자 발생 시 신속한 정보 공유, 온 국민의 마스크 쓰기 협조, 무료 치료비 제공 등으로 코로나 방역 모범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인 미국조차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보여준 방역 우수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계적인 평가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은 엇갈렸다. 한쪽에서는 우리의 우수한 방역시스템과 헌신적인 의료진을 칭찬하기에 앞서 비난 일색의 거친 평가를 쏟아내기도 했다. 지난여름 광화문 집회와 사랑제일교회 등의 대면예배 등으로 확진자가 늘어날 때, 일부 세력들은 정부가 감염병을 퍼뜨리고 있다고 했고, ’감염병 독재’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면서 국민분열을 부추겼다. 우리나라는 최근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도 OECD 국가 중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지만, ’경제폭망(폭삭 망했다)‘이라는 마타도어 속에 묻히고 말았다. 이는 공정한 시각으로 사안을 읽어내려고 하지 않고, 감정적이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버리는 잘못된 버릇과 관련이 있다.

 지금 안심해도 될 만한 상황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한순간이라도 방심한다면 금방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거나 해괴한 용어를 동원하여 국민을 편 가르고 절망을 부추기는 것을 옳지 않다. 언론에서는 일부의 극단적인 말을 받아쓰기에 바쁜 듯 ’독재’라는 말도 여과 없이 비친다. 예전처럼 아침마다 보도지침을 받아서 기사를 내보냈던 시절을 잊은 모양이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필자는 왜 우리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접근을 피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는 망국적인 당파싸움의 역사가 있다. 이의 가장 큰 폐단은 건전한 상식을 거세시켜 버린 것이다. 자기편에게 이로우면 거짓도 진실이 되고, 진실도 거짓이 되었다. 백성과 나라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파의 시각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그 사실 속에 담긴 미래지향적 가치를 외면했다. 그래서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늘 편을 나눠 견공(犬公)들처럼 왈왈 짖어대면서 패싸움만 한 것이다. 우리가 매사에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

 칭찬에 인색하고 객관적 접근을 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수상’과 관련한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노벨상은 국적, 남녀, 신분 등을 차별하지 않고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이에게 주는 세계 최고의 상이다. 독자들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2000년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남북 화해와 평화에 이바지한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이는 DJ 개인의 영광을 넘어 국가적으로도 매우 영예로운 일이었다.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도 호외 기사를 발행하면서까지 이를 환영했고, 클린턴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그리고 세계 정상들의 축하 메시지가 쏟아질 때, 우리나라의 야당과 보수 언론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반대한다며 스웨덴 한림원에 항의하는 소동을 벌였다. 당시 노벨상 선정위원장 베르예는 그들이 ‘노벨상을 주지 말라’고 로비한 사실을 공개하였다. 이런 꼴에 질린 스웨덴 한림원은 ’한국이라면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니, 한동안 우리나라 사람은 노벨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2017년 10월 19일 자 연합뉴스 “MB 국정원 DJ 라프토상 취소 청원-노벨상 취소 공작 차원”이라는 보도에 따르면 이미 받은 노벨상을 취소하기 위해, 그 전 단계로 DJ가 받았던 국제 인권상인 라프토상 취소 공작을 벌였다니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는지 그저 놀랍고 당황스러울 뿐이다.

 필자가 이렇게 부끄럽고 치졸한 사건을 떠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것을 국민의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면서도 ’K-방역의 우수성’으로 세계의 인정을 받는 나라, 이데올로기의 대결장이었던 동아시아 끝에서 조국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노력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 누가 이런 일을 했느냐와 상관없이 자랑스럽고 든든한 일 아닌가. 정파가 다르다 해서 그들이 할 일이 다른 것은 아니다. 모든 정파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또한, 잘한 일은 칭찬하고 인정하면서 자신들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라가 망해도 자신의 집안과 파벌 챙기기에 급급했던 지난날의 당파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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