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얼굴] <79> 李愛子양(이애자)...판소리 大賞에 빛나는
[자랑스런 얼굴] <79> 李愛子양(이애자)...판소리 大賞에 빛나는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10.24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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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갈고 닦은 名唱에의 길

  1988년 전국 판소리 명창 경연대회 일반부 대상을 차지한 李愛子양(이애자·26·남뭔군 대산면 기촌리 15).

 여자나이 26살이면 혼기를 맞을 나이이지만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다.

 아버지 李七龍씨(이칠용·66)와 어머니 崔金女씨(최금녀·61)사이의 2남3녀 중 막내인 李양은 국민학교 졸업 후 가정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학교에 갈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 보고자 판소리를 시작했지요”

 응어리 진 마음을 탈출구를 찾아 시작했던 판소리가 이제는 李양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한다.

 1978년 남원국악원에서 인간문화재 제5호인 姜道根옹(강도근·71)의 지도를 받게 되면서 재능을 인정받아 10년이 넘게 姜옹의 제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제29회 호남예술제 판소리 부문 최우수상, 전국학생판소리경연대회 최우수상(1984), 전국판소리명창경연대회 일반부 우수상(1986·1987)등 굵직한 상을 휩쓸어 왔다.

 “학교공부에 대한 미련을 도저히 버릴 수 없어 20살때 아무도 몰래 중학교 입학원서를 냈다”는 李양은 南原여중과 漢南여고 재학 중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큰힘이 되었다고 한다.

 李양은 매일 새벽 5시면 집을 나서 국악원으로 향하고, 주말에는 육모정·뱀사골 등 지리산의 계곡을 찾아가 연습에 열중한다.

 올 한해 득음을 목표로 백일공부에 충실하기 위해 그렇게 바랐던 대학 진학도 잠시 미루었다고.

 李양은 “내년에는 꼭 대학에 진학하여 단순한 소리꾼이상의 東便制(동편제)를 정리하고 후배를 성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야무지게 이야기한다.
 

 글 박영자·사진 공호담
 김재춘 옮김
 1989년 3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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