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모시기, 이제는 어찌할 것인가
조상 모시기, 이제는 어찌할 것인가
  •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 승인 2020.10.2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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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는, 인생살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추모’를 꼽는 유교사회였다. 기리고 우러르고 교훈으로 진작시키며 생사간에 조상을 성심으로 섬겼다. 특히 임진왜란 중에 억울한 죽음,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죽음 등 격렬한 전쟁의 참화로 죽음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었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닥친 목불인견의 참상으로서, 그냥 노경을 거치는 자연사보다는 그 죽음의 의미가 심장했다. 임진왜란뿐만 아니리라. 우리 역사상 기록된 수많은 전쟁 참화는 또한 무참한 죽음을 몰아 왔으니까. 죽음을 가까스로 모면한 사람들에게는 이웃이나 가족의 죽음이 더욱 통절하였다고 보여진다. 유교적 전통도 있었겠지만 저러한 죽음들 앞에서 우리 조상은 보다 경건한 ‘추모’의 정리를 깊게 하였으리라.

 죽음 뒤에는 후속 조치로서 장례 문제가 대두한다. 주검을 경건히 모시는 예는 미풍양속으로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온다. 그런데 오늘날 바쁜 일상 속에서 옛날식 예법은 복잡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 의미나 의의도 퇴색되고 꼭 그래야 할 것인가 하는 당위성도 희석된 지 오래다.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우리 노년 세대는 관례를 따르고는 있지만 우리 의식 속에는 이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품어 온 지 오래다. 또한 후속 세대는 의식이 확연히 달라진 경우를 도처에서 보게 된다. 가족의례준칙도 실행함에 있어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조상 모시기, 이제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수백년 내려온 관혼상제의 전통을 이렇게 바꾸자 저렇게 간소화하자는 식으로 하루아침에 변모시킬 수는 없지만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은 순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대로 두고 우리가 눈 감기에는 어쩐지 양심상 허락되지 않는다. 집안마다 약간씩 관혼상제의 예법을 고쳐 행하는 것도 가끔 보여진다. 그 부담스럽기 한량없는 저 벌초도 하지 않고 초목 우거진 속에 방치한 경우도 있다. 유골을 파내어 화장하고 인분을 만들어 수목장을 하거나 강물에 띄우기도 한다. 과연 번거롭다면서 다시 번거로운 일을 스스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냥 그대로 두고 봉분만 깎아내리고 평장의 상태로 둔다면 이미 수목장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없애지 말고 서서히 없어져 자연으로 돌아감이 순리가 아니겠는가.

  제사는 가족들 모여 식사전에 밥상 그대로 둔 채 목례로 추모의 언행만 챙기고, 있는 듯 없는 듯 넘어가면 종교 간섭도 피하고 제례가 우리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거부감 없이 행해지지 않게는 가. 추모의념만 경건하면 될 것이다. 지방은 글 몇 줄로 추모의념 담으면 될 것이고, 조상신이 있거나 없거나 따질 것은 없고, 우리의 정성만 가꾸어 엄존시키면 될 터이다. 비석이니 상석이니 가만히 옛 무덤 옆에 뉘여 흙으로 덮고 자연의 돌조각으로 숨 쉬게 하면 될 것이다. 직계존비속 가족끼리 합의하여 옛의례 고금, 변화된 의식 조금 병존시키며 합리성을 띠면 좋을 성싶다. 우리의 일상 음식이 제물로 쓰이고 그대로가 가족들 식사가 되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음식없이 예절을 먼저 찾고 밥 먹어도 될 터이다. 이러저러한 관혼상제 예법은 국가가 제정하는 것도 아니고 지자체별로 법도를 마련할 것도 아니며 다만 종중 씨족별 준법을 숙의하여 만들면 좋을 성싶다. 축문 형식도 폐하고 다시 현대식 추모의 글이면 되겠다. 간절한 소회를 손자에게 읽히면 그 아니 좋겠는가. 사진 꺼내 상 머리에 안치하고 목례 정도 올리며 간단하면서도 정중히 차례를 치르자. 큰 명절도 간소화의 길 찾아가면 얼마든지 좋은 공동선을 창출할 수 있으리라.

  전남 지방 어느 마을에선 성씨가 각각 달라도 함께 간소한 제물 동청에 차려 놓고 합동으로 큰 명절 차례 지내는 곳도 있다. 너무 훌륭한 예법이 아닌가. 한 고을에 살던 혼령들이 저 머나먼 저승길을 함께 동행해 와서 함께 먹고 담소하다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가시게 하면 좋지 않겠는가. 관혼상제의 법도는 죽은 사람의 법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법도이어야 한다.

 소재호<전북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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