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선택
어느 날의 선택
  • 서정환 수필가
  • 승인 2020.10.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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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날마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하여야 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망설이고만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택 앞에 서면 명쾌하게 이거다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기 일쑤다.

 오늘만 해도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열리는 석정문학제에 참석할 것인가로 한참을 망설였다. 그동안 한 번도 전주를 떠나 기차가 아닌 승용차로 가야 하는 곳은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멀미가 심해서 고삐에 매인 소처럼 전주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들이 운전하니 쉬엄쉬엄 갈 수도 있고 여차하면 되돌아올 수도 있으니 안심이 되어 가기로 일단 결정을 한 것이다.

 특히 석정문학상 수상자로 내 고장 출신 원로 시인 이운룡 박사와 촛불문학상 수상자로 김영 시인이 받게 되니 가서 축하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다가 못가면 별도리가 없지만 일단 가기로 결정을 했고, 몇 시에 출발할 것인가로 망설이다가 오전 열 시로 정했다. 일찍 출발해야 중간지점인 김제 아리랑문학관도 둘러보고 해찰을 하면서 가면 멀미가 성질을 부리지 않으리라고 믿으며 출발했다.

 김제에 도착하니 열한 시 하고 반이 지나있다. “어, 이러다간 점심을 굶게 생겼다. 여기서 맛집을 찾아보자.” 부안에 가서 점심을 먹기엔 너무 늦을 것 같아 아들에게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바지락죽집이 맛집이라고 나옵니다.” 한다. ‘바지락죽’은 부안이 원조인데 왜 여기서 나오냐? 구시렁거리면서 찾아 들어갔다. 바지락죽을 먹으면서 부안에 가면 당연히 바다는 보고 와야 할 터이고, 해물도 맛보고 중간에 조각공원, 반계 선생 유적지 등등 가볼 곳이 많은데 어떤 곳을 선택할 것인가 시간을 맞춰본다.

 일단 부안에 도착해서 선택하기로 하고 출발한다. 김제시를 벗어나니 아리랑문학관과 아리랑문학마을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일직선상에 있으면 두 곳을 다 관람하고 갈 수 있는데 목적지에 가까운 곳이 문학마을이어서 망설임 없이 문학마을을 구경하기로 한다. 조정래 소설가가 일제 강점기 때 김제평야에서 일본인들의 악랄한 수탈의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대하소설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마을. 수탈 장소였던 죽산면사무소를 비롯하여 우체국, 정미소, 주재소 등을 넓은 장소에 조성해 놓았다. 곳곳마다 농민들의 피땀을 훑어간 흔적이 소상하게 정리되어 있어 다시 한 번 일제의 치밀한 수탈에 몸서리가 쳐졌다.

 이정표가 붙어 있는 곳마다 스마트폰으로 찰칵대면서 부안 석정문학관에 도착하니 두 시가 지나고 있다. 우선 수상자 두 분을 만나 마음을 다해 축하드리고, 주최하시는 분들이며 하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시상식은 많은 하객이 운집한 가운데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바닷가로 가서 해물 맛을 보고 올 것인가 아니면 조각공원을 갔다 올 것인가 선택을 못하고 우물거리고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끝나갈 다섯 시 무렵에는 찬바람이 불어와 좀 추워지기 시작했다. 바닷가의 해물이나 조각공원을 선택은커녕 생각조차 할 수 없이 된 시간이 된 것이다.

 이때 문득 ‘부리단의 당나귀’가 생각났다. 허기진 당나귀가 길을 가다가 먹음직스런 건초더미 두 개를 발견했는데 두 개의 건초더미는 서로 비슷해서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우측 더미로 가면 좌측 더미가 더 크고 먹음직스러웠고 좌측 더미로 가면 반대로 우측 더미가 더 크고 먹음직스러웠다. 당나귀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갔다 왔다 하다가 결국 굶어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다.

 인생의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걸어보지 않고서는 어떤 길이 나은 선택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최악의 선택보다 더 불행하다고 한다.

 오늘 내가 두 개의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체면의 무게가 더 무거웠던 것 같다.

 서정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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