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7) 문태준 시인의 ‘가자미’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7) 문태준 시인의 ‘가자미’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0.1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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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미’ 
 

 - 문태준

 

 김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 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 준다

 

 <해설>  

 제가 김천에 처음 발걸음 한 것은 제 첫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를 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 시집이 한창 화제가 되자 김천소년교도소에서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곳, 수용자들에게 시집을 읽게 하고 독후감을 쓰게 했는데 수용자들이 저를 만나보길 희망한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 가게 되었는데, 한 번은 이 ‘가자미’라는 시를 복사해 가지고 가 나누어 주면서 청소년들과 함께 감상하다 같이 울었습니다. 

 이 시에 무슨 해설이 따로 필요 할까요. 시 속에 나오듯 시인은 ‘김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으로 누워 있는 그녀에게 병문안을 갑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르고 야윈 모습이 수족관 바닥에 딱 붙은 가자미 같아서 가만히 그녀 곁에 누워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녀는 지금 느릅나무 껍질처럼 숨이 거칠어지고 이제 죽음 바깥의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 첫 행에서 가슴이 미어져 오면서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둘째 오빠가 보였고, 시를 다 읽었을 때는 지나간 시간들이 제 몸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암과 싸우며 병원에 누워 있을 수많은 환자들이 실루엣처럼 스쳐 갑니다.

 저 또한 어느 겨울 폭설을 이기지 못한 잣나무 가지처럼 쭉 찢어 진 채 허연 살을 드러내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던 시간이 있었지요. 저는 그날 김천소년교도소의 청소년들이 제 이야기를 들으며 손등으로 눈물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청소년들이 흘리던 눈물은 따뜻했습니다. 아니, 그 뜨거운 눈물이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고 환한 세상으로 돌아갔으리라 믿습니다. 가을 햇살이 유난히 곱네요. 오늘은 박스를 열어 그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어볼까 합니다.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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