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 그들만의 언어 그 험악함을 경계하라
논객, 그들만의 언어 그 험악함을 경계하라
  •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 승인 2020.10.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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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에서 논객(?)들의 설전은 항상 뜨겁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자 안간힘을 쓴다. 코로나 19의 위기 등 사회적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그런 말장난이나 혐오가 국민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해(公害)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 데나 대고 제멋대로 호통치고 떠드는 세상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TV의 토론이나 대담 프로를 잘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논리가 없이 막말 논쟁만 하기 때문이다. 토론이나 대담은 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최근의 논객들은 논거의 빈약함을 채우기 위하여 상대의 말실수나 잘못을 찾아내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들을 시도 때도 없이 하다 보니 막무가내식 설전(舌戰)은 어느새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이 국민의 삶과 관련되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소수의 논객은 이를 독점한 듯 약방의 감초처럼 아무 데나 머리를 들이대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중에는 발전 방향이나 대안은 없고 오로지 상대방을 흠집 내기에만 급급한 것이 많다. 열린 사회에서 비판과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본질을 외면한 채 곁가지를 가지고 험악하게 말싸움하는 것을 지적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아무개들의 발언이 언론의 받아쓰기로 확산하면서 논란이 일어나고, 또 집단의 유불리를 따른 2차 설전(舌戰)으로 번지는 등 매번 진흙탕 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칠고 험한 발언을 쏟아냄으로써 포털 상위에 오르는 행운(?)을 누릴지는 모르나, 공허한 말싸움으로 점차 삭막해지는 사회를 바라보는 마음은 그저 씁쓸할 뿐이다. 게다가 언론에서도 아무개들의 말(때로는 함량 미달의 말도 많다)을 부각하면서 은근히 관련자들의 싸움을 유도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본질을 비껴가면서 우리 사회를 신경질적으로 만드는 그 막말의 위험 수위는 자못 심각하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내용인데, ‘진정한 민주주의’란 ‘다양한 해석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아무개들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해석은 아무개 숫자만큼이나 다양하지만, 현실은 평화로움을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언론에는 신선한 뉴스가 없고 막말의 재탕, 삼탕만 정신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역동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심각한 곡해(曲解)에 짓눌려 이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본론 중심의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곁가지를 치면서 국민 편 가르기에 혈안이 된 듯하다.

 이미 세상에 떠들썩한 이야기다. 지난 13일 조정래 소설가가 한 인터뷰에서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된다. 민족 반역자가 된다.”라는 말을 하자 진중권 교수는 “이 정도면 광기다. 대통령 따님도 일본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안다.”라고 되받아쳤다. 두 분의 발언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이는 소설가 조정래에 대한 반박을 넘어서 대통령까지 끌어들이는 ‘논점 전이’를 감행한 것이다. 최근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설전(舌戰)은 늘 이런 식이었다. 그러자 여당의 논평도 사뭇 거칠어졌다. “이론도 없고 소신도 없는 줄 익히 알고 있지만, 예의마저 없다”라면서 “예형(173년~198년)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리하라”라는 말까지 나왔다. 삼국지에서 독설과 막말로 조조, 유표, 황조를 능멸하다가 처형당한 예형의 이야기는 그 당사자에게 “목줄을 끊겠다”는 협박이라며 반발했고, 마침내는 정계와 언론계의 공리공론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국민으로서는 놀랄 일도 아니고 문제 될 일도 아닌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막가파식 논쟁이 우리의 언어생활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얼마 전 북한군에 피격당해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아들에게 보낸 대통령의 답장과 관련한 논란이다. ‘손편지가 아닌 데다 친필 사인도 없는 15줄짜리 답장’이라는 비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속 시원한 답을 듣고 싶었던 유족의 처지에서는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야당과 언론에서는 ‘손편지와 친필 사인 없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추고 논란을 부추길 일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소속된 사회나 집단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판도 하고 반대도 한다. 언론도 그렇고 지식인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다만, 저급한 말꼬리 잡기, 비꼬기, 생트집 등으로 논쟁을 부추기는 것은 옳지 않다. 여러 말 할 것이 없다. 반대도 예쁘게 말하고 비판도 예쁘게 말하는 넉넉함을 보여 달라. 거칠고 험한 말은 언제나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얼굴을 다치게 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 상처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 자신은 무시당하지 않고 대우받기를 바라면서, 정작 자신들이 내뱉는 냉소와 모욕에는 왜 그렇게들 눈을 감고 있는지 모르겠다.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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