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기 시인의 ‘파프리카를 먹는 카프카’…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실존
홍철기 시인의 ‘파프리카를 먹는 카프카’…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실존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10.14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하향이 퍼질 것만 같은 민트색 표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요즘 말로 ‘갬성(감성의 비표준어)’을 품은 시집을 펼친다.

 내용도 마찬가지다. 유쾌하고 재치가 번뜩인다. 때로는 톡톡 튀는 언어로, 때로는 누구보다 직설적이게, 때로는 수줍은 얼굴로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넘친다.

 홍철기(46) 시인이 제27차 감성기획시선 공모 당선시집 ‘파프리카를 먹는 카프카(시산맥·9,000원)’을 펴냈다.

 시집은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모두 60여 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사람의 감성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시인은 삶의 여러 흔적과 자리, 그리고 풍경을 통해 사랑을 기억해내고, 처연한 그리움을 마주한다.

 “옷을 입다/ 문득,/ 떨어진 단추 자리// 어디서 흘린 것인지/ 언제 내게서 떠난 것인지 모를// 당신도 내 마음에/ 자국 하나로 남았다” 「자국」 일부

끝내 당신은 “자국 하나”로 남았다. 시인은 그 상태를 “벌어져 채워지지 않는/ 자리”라고 했다. 사랑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가장 잘 드러낸 시에서 시인은 ‘흔적’으로 남아 유랑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난독증’에서는 구석에 쌓인 먼지 뒤편에 “읽다 말고 놓인 책 한 권을 만났다/ 다시, 당신이었다”라고 확인한다.

  “그대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늦은 저녁 멀어지는 해를 따라 저물지 않는 일”이라 입을 뗀 ‘마흔’에서는 “그대 보내고 해 보는 일이란/ 근처 한 줌의 흙을 쌓아 올리는 일”뿐이라고 나지막이 전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바람에 실려보낸다.

 홍 시인은 머리말에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어깨를 잡고 등을 두드려준 당신에게 이젠,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적었다. 두려워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시인의 메시지일 터. 기울어진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던져졌을지라도 말이다.

 그의 시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 혹은 몰랐던, 알지만 한 켠에 남겨두었던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싫지 않다. 시집을 읽다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간 거울 속 모습을 바라보면서 복잡한 머리가 잠시나마 개운해짐을 느끼게 된다.

 한용국 시인은 추천사에서 “어느 날 시인은 그야말로 낯설고 기이한 세계에 던져졌다. 하지만 이 던져짐은 역설을 품고 있다. 내부에서 외부로 던져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내부로 던져졌기 때문이다”면서 “유랑만이 존재의 형식이 되어버린 시인은 그렇게 자신이 던져진 세계를 떠돌면서 하나하나 유랑을 기록해 나간다”고 평했다.

 홍 시인은 전북 익산 출생이다. 201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분 당선과 2017년 ‘시와표현’으로 등단하면서 문단에 얼굴을 알려왔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현재 군산시청에 근무하고 있다.

 김미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