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우리말 산책] (6) 혼 구멍은 어디에 있을까?
[바른 우리말 산책] (6) 혼 구멍은 어디에 있을까?
  • 안도 전 전라북도 국어진흥위원회 위원장
  • 승인 2020.10.1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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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사극(史劇)을 보면 무수리나 상궁끼리 서로 싸움을 벌이다가 “웃전에 고해 혼구멍을 내 주겠다”고 하면 싸움을 그치고 겉으로는 사태가 수습된다. 하지만 이는 참 웃기는 얘기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 무수리나 상궁을 ‘웃전’에 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흔히 ‘윗 전’을 잘못 써서 말한 ‘웃전’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이나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웃전’은 또 임금이 어머니인 대비마마를 가리켜 말하는 2인칭 호칭으로도 쓰인 말이다. 그러니 무수리나 상궁끼리 싸움을 했다고 대비에게 알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아마 그랬다가는 금부도사에게 끌려가 볼기를 맞았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앞의 예문에서도 나오듯이 “혼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혼구멍나다’‘혼구녕나다’‘혼꾸녕나다’등으로 쓰이는데 이 말들은 모두 틀린 말이다. 어원에서 멀어진 말은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우리말의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이 말 역시 혼(魂)에는 구멍이 없기 때문에 “혼에 구멍이 나다”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혼구멍나다’를 표준어로 삼지 않고, 그냥 소리 나는 대로 ‘혼꾸멍나다’를 표준어로 정하고 있다.

 ‘혼꾸멍나다’는 호되게 꾸지람을 듣거나 벌을 받을 때 흔히 쓴다. ‘혼꾸멍나다’는 ‘혼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왜 ‘혼꾸멍나다’라고 표기할까? 한글맞춤법에 “앞말과 뒷말이 결합할 때 본뜻이 유지되는 경우는 그 원형을 밝히어 적고, 그 본뜻에서 멀어진 경우는 본래 형태를 밝혀서 적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혼꾸멍’은 ‘혼’과 ‘구멍’의 본래 뜻이 유지되지 않으므로 ‘혼구멍’으로 표기하지 않고 ‘혼꾸멍’으로 표기한다. 그리고 ‘혼꾸멍’은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나다. -내다 등과 함께 쓰여서 정신(魂)을 잃을 정도로 혼이 났다는 뜻이 된다.

 

 / 안도 전 전라북도 국어진흥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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