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 백운면서 우리 옹기 만드는 이현배 옹기장
진안군 백운면서 우리 옹기 만드는 이현배 옹기장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10.05 17: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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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숲과 맑은 하늘이 가득 찬 진안군 백운면, 이곳에서 ‘손내옹기’를 운영하는 이현배 옹기장(58)은 밝은 웃음으로 옹기를 빚고 있다. 그가 만든 옹기들은 청아한 소리와 단단함이 함께 이. 1991년부터 옹기에 빠져든 그는 2008년 유네스코 선정 ‘Award of Excellence for Handicrats’를, 2017년에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7호 옹기장 기능보유를 받았다. 백운면을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이현배 명장은 장수군 장계면 출신이다. 어렸을 적 안해본 일이 없다는 그는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힐튼호텔에서 6년간 디저트 분야을 담당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때 고물상 일과 ‘뿌리 깊은 나무’와 브리태니커에서 나온 ‘한국의 발견’을 만나 문화에 눈을 떴다는 그는 1991년 호텔 일을 그만두고 옹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남 보성 징광옹기점 박나섭 옹기장과 경북 문경 영남요 김정옥 사기장에게서 수련을 거친 그는 1995년에야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전주 우진문화공에서 처음 전시를 가지며 이 명장은 옹기에 대해 직업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옹기는 밥을 담아온 오목아리에서부터 똥을 담아온 합수독아지까지, 한반도 사람들이 일상을 산다는 것이죠. 또한 세상에 태어날 때는 태항아리, 죽어서는 옹관까지 한반도사람들이 나고 죽는, 그야말로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담아왔습니다”

 이 명장은 전통적인 조형이 아니고도 모던한 조형미에 현대적 쓰임새를 결합시킨 옹기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인사동 쌈지길의 전문 옹기가게와 한옥마을 지점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가 만든 옹기는 장독대 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식탁에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을 갖췄다. 또한 이 명장은 옹기를 예술로 품으며 초대 및 개인전을 16회나 가질 정도로 옹기의 예술성도 널리 알렸다.

 그가 진안에서 살게 된 이유에 대해 발원지에 의미를 두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익숙한 금강수계(뜸봉샘)에서 자리를 찾으려 했으나, 마땅한 자리를 못찾아 섬진강수계(데미샘)로 넘어오게 되었다는 것

 “옹기 일을 익히고 독립을 할 때 서울생활 10년, 전남 벌교와 경북 문경에서 살았었기에 의식이 확장되어 무진장과 진안 고원이 하나로 보였지요”

 이 명장이 만든 옹기들은 ‘자작자족(自作自足)’의 가치를 무게로 두고 있다. 그의 가마터에서 나오는 옹기들은 최신식 터널 가마가 아니라 옛 방식인 장작 가마를 먼저 두고, 내열 옹기는 현대식 가마로 마감한다. 이 명장의 옹기들은 ‘느린 방식으로 오고, 스스로를 만듦의 가치를 두고, 삶의 질을 높이는’ 부분을 갖추고 있다.

 이 명장은 옹기 제조 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에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옹기전문인력양성’ 에 나섰고, 문화재청 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영산강유역 대형전용옹관 고대기술복원’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숭례문복구용 기와가마 자문 및 조성에도 참여했으며, 2010년 올해의 마이스터 명장후원사업을 통해 옹기식기 개발에도 나섰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진안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도 같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도 강대중 서울대학교 평생교육학과 교수와 같이 ‘평생학습 이론 구축을 위한 핵신개념 탐색과 사례 연구’에 참여했으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연구과제 ‘난파선 출수 고려도기연구’에 복원재현분야로 참여해 도기에서 자기가 분화되는 도기 문화를 제작해 필 뜻을 밝혔다.

 이 밖에도 이 명장은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갈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80년 전만 하더라도 진안군에서 약 200명의 장인이 있었지만 이제는 변해가는 사회속에서 옹기를 만드는 이는 적고, ‘앞일꾼(그릇 조형)·뒷일꾼(말리기)’를 모두 다 해야하는 상황. 가마에 불 때는 일만 하더라도 최소한 5명이 있어야 하는 만큼 앞으로 최소 인력 확보에 있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명장은 옹기를 만드는 일에 ‘고마움’을 표했다. “‘옹기일을 배우고 싶어서요’라고 말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옹기일을 붙들며 그 이유를 계속 찾아왔습니다. 옹기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과정들이 매우 좋았습니다. 옹기일이 매우 고맙습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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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2020-11-28 08:23:29
자기 욕심에 자식들은 이용하지마세요 혼자만 예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