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5) 안성수 시인의 ‘파도’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5) 안성수 시인의 ‘파도’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10.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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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
 

 - 안성수

 

 울컥울컥 토할 것 같은 슬픔

 바위에 부딪쳐

 파도는 그렇게 푸른 멍이 들었나보다.

 

 저 깊고 깊은 바다 속을

 기어 나와

 바닷가에 제 얼굴 문지르며

 파도는 그렇게 상처의 흔적을 지우나보다.

 

 깜깜한 밤

 몰래 와서 파도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잊고 싶었나보다.

 

 한 번 떠나가면 못 올

 몸뚱아리에

 자신만 아는 문신을 새겨 넣으며

 생살 찢는 이별을 고하나보다.

 

 너도 나처럼

 

 <해설>  

  추석은 잘 쇠셨는지요. 고향의 정을 느껴 보셨는지요. 한가위의 보름달을 보며 건강과 평화로운 날들을 빌어 보셨는지요. 이번 추석은 코로나 때문에 고향을 가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아니면 바다를 가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언젠가 ‘사랑에 관한 잠언’에서 읽었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사랑을 고백해도 상대가 받아 주지 않거든 그 사람에게 다시 바다에 가서 고백해 보라. 그러면 그 사람도 바다를 보며 자기 존재가 모래알만큼 작다는 것을 느껴 받아 줄 것이다.’ 이래서 사람들은 사랑할 때 바다를 찾는 걸까요. 또 누군가는 사랑을 잃고 울컥울컥 토할 것 같은 슬픔을 달래려고 바다를 가고, 어떤 이는 상처 받은 가슴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밤바다를 몰래 가서 울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그 멍든 가슴에 자신만 아는 문신을 새기며 새로운 각오로 다짐하면서 자신의 수레바퀴를 굴리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포르투칼의 리스본 사람들은 바다와 함께 살다보니, 자신의 상처를 바다에 떨쳐 내기보다는 오히려 바다의 상처까지도 끌어 않는 듯한 ‘파두’라는 민요를 즐겨 듣지요. 마치 창자가 끊어질 같은 애절한 목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슬픔의 묘한 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슬픔은 어쩌면 삶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고.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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