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공화국 정읍의 보랏빛 향기
향기 공화국 정읍의 보랏빛 향기
  • 김성철 전북은행 부행장
  • 승인 2020.09.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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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는 기억을 소환한다. 어떤 향기를 맡는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나 장소, 시간이 저마다 있기 마련이다. 향기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인 해마와 연결되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도록 강하게 자극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느 날, 홍차에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린 시절 고향에서 숙모가 내어주곤 했던 마들렌 향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로 이어졌는데 이처럼 특별한 향기를 통해 무의식 속에 내재된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프루스트 효과’는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향기는 좋은 느낌을 주는 냄새로 공기 중에 발산되어 인간의 후각 신경에 감각되는 여러 휘발성 성분 가운데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보통 악취를 향기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좋은 느낌과 좋은 감정은 향기의 필수 조건인 셈이다.

 또한 향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되는데 지금까지 약 40만 개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졌으며,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의학적 치료나 마케팅 일환으로 그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 블루’를 넘어 ‘코로나 블랙’ 시대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에 많은 제약이 따르자 나타나는 우울 증상인 코로나 블루에서 이제는 모든 것이 암담해졌다는 의미의 코로나 블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모든 사람이 이래저래 어렵고 힘들다.

 이처럼 우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향기가 위로와 치유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말했듯, 향기는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인간의 감각기관의 반응뿐 아니라 정서적 반응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향기 공화국’을 자처하고 나선 정읍시의 발 빠른 행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읍시 구룡동 정읍 허브원에는 라벤더 꽃이 보랏빛 장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총 33㎡ 규모에 지난해 5월부터 식재한 34만주의 꽃들이 만개하며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보랏빛 향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라벤더는 6월~9월까지 만개하며 아토피나 스트레스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라벤더를 통해 힐링과 치유의 도시는 물론, 향기 산업을 지속 가능한 관광 콘텐츠로 만들어 대한민국의 대표 향기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정읍시의 로드맵은 지역 향토 자원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고 이를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육성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엄청난 부가가치와 볼거리를 제공하며 향기공화국 정읍의 위상을 드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천변을 중심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봄의 벚꽃을 시작으로 여름의 라벤더와 연꽃, 가을의 구절초와 함께 꽃이 진 이후에는 향기를 활용한 치유센터도 운영한다고 하니 꽃과 향기로 가득할 정읍의 사계절이 벌써 기대된다.

 역사 속 한 페이지에 나오는 정읍의 향기는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라 불리는 ‘피향정(보물 제289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읍시 태인면에 위치한 ‘피향정’ 역시 ‘향기가 주변에 가득 퍼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직 당시 이곳 연못가를 거닐며 풍월을 읊었다고 전해진다. 향기가 정서적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향기로운 연꽃 무리를 보면 시 한 수가 저절로 나왔을 법하다.

 라벤더의 꽃말 중 하나가 ‘기대’라고 한다. ‘정향(井香)누리’, 위로와 치유의 정읍의 향기가 온 세상에 퍼져 코로나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성철 <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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