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대한 유토피아적 공간을 기억하다 ‘함양, 원스 어폰 어 타임’
고향에 대한 유토피아적 공간을 기억하다 ‘함양, 원스 어폰 어 타임’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9.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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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철원의 소설집 ‘함양, 원스 어폰 어 타임(바른북스·1만4,000원)’을 펼치면, 때아닌 고향이 생각이 난다.

 별안간 그 시절 내 앞에서 웃음지었던 소년의 웃음이 생각나고, 불현듯 거나하게 취해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던 아버지의 노랫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새벽에 들려왔던 두부 장수의 종소리나 해질녘 하얀 구름을 내뿜으며 달려가던 소독차의 풍경도 아른거린다. 한참을 읽다보니 그렇게 고향 언저리에서 꿈속을 서성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함양,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서 작가가 2013년 등단 이후 7여 년에 걸쳐 발표하거나 미발표된 단편소설 7편을 묶어낸 소설집이다.

소설집의 시대적 배경은 넓다. 멀게는 선사시대 바리공주 신화부터 가야시대 우륵,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을 거쳐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 소설마다 설정된 ‘함양’의 공간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삶의 무대로서의 서사적 배경으로 담겨 흥미롭다. 시대마다 살아온 인물들의 삶에 얽힌 무수한 자국들이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 찍혀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게 된다.

 특히 역사적인 사건과 접목된 ‘함양’의 공간은 시간·공간 이미지를 반영하는 서사물로서 현실적·실제적 스토리를 들려준다. 이는 서 작가의 아주 특별한 장기이기도 하다. 시공을 초월한 고향에 대한 생각, 생의 무늬를 함양이라는 터에 투영한 작가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기에 그렇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구성에서 불거진 의외의 낯섦은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누에의 꿈’, ‘사도’, ‘여우비’, ‘가야무사’, ‘금호미, 금바구니’, ‘칼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함양’까지 총 7편의 개별 소설들이 갖는 공간적 정체성은 시대적으로 재구성된 인물들의 존재 방식에서 드러난다. 이를테면 ‘누에의 꿈’에서 누오와 박지원은 각자의 길을 놓고 헤어질 수밖에 없으며,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의 사연은 현대의 살아가는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서 작가는 “소설의 공간은, 작가에 의해 창조되거나 실제의 현장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실적·공간적 제한을 넘어 어느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며 “이번 소설집에서의 함양에 관한 공간적 정체성은, 아주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고향에 대한 유토피아적 공간에 해당되며, 누구든지 인생을 열어가는 데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시간 이미지로서의 공간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서 작가는 경남 함양 출생으로 전주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북대 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장편소설 ‘왕의 초상’, ‘혼,백’, ‘최후의 만찬’, 학술연구서 ‘혼불, 저항의 감성과 탈식민성’ 등을 펴냈다. 계간 문예연구 겨울호 신인문학상,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최우수상, 제8회 불꽃문학상, 제12회 혼불학술상, 제9회 혼불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올해 ‘최후의 만찬’으로 세종도서 문학부문 우수도서에 선정된 바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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