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우리말 산책] (4) 횡단보도(橫斷步道)
[바른 우리말 산책] (4) 횡단보도(橫斷步道)
  • 안도 전 전라북도 국어진흥위원회 위원장
  • 승인 2020.09.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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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단보도(橫斷步道)’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루면 몇 번을 가로질러 건너는 길이지만, ‘횡단(橫斷)’이라는 말은 “옆으로 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실로 어색한 말이다. 물론 일제 때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어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횡단보도’라는 말의 의미는 ‘걸어서 옆으로 통과하는 길’인데 여기에 ‘옆으로 끊는 길’이라는 뜻을 지닌 ‘횡단(橫斷)’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억지로 만든 조어(造語)다.

  중국에서는 ‘통과하다’는 뜻을 지닌 ‘천(穿)’을 붙여 ‘횡천(橫穿)’이라 하거나 ‘옆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횡행도(橫行道)’ 혹은 ‘횡행도로(橫行道路)’라 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에 ‘횡단(橫斷)산맥’이 실제로 있는데, 사천성(四川省)과 운남성(雲南省)에 위치한 이 산맥이 동서 간의 교통을 횡으로 끊어 놓았기 때문에 ‘횡단(橫斷)’ 산맥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열차를 ‘횡단열차’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더욱 모순이다. 그 열차는 분명 유럽과 아시아를 ‘횡으로 끊어 놓는’ 열차가 아니라 ‘횡으로 이어주는’ 열차다. “대학생들, 국토종단 행진에 나서”나 ‘국토종단 마라톤’ 등에서 보는 ‘종단(縱斷)’이라는 용어 역시 ‘종으로 끊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명백한 논리위반의 ‘비논리적’ 조어(造語)에 해당된다. 이러한 용어들의 범람은 대중들의 논리적 사고를 가로막고, 결국 국가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보도(步道)’라는 말도 ‘걸어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용어이므로 ‘보(步)’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보행(步行)’으로 사용하여 ‘보행도(步行道)’라고 쓰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 안도 전 전라북도 국어진흥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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