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3) 권덕하 시인의 ‘하나를 보면’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3) 권덕하 시인의 ‘하나를 보면’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9.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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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를 보면'

  - 권덕하

 

 흔들리는 풀꽃 바라보는 눈길에

 길 가다 지렁이 피해 가는 걸음에

 길섶에 누운 빈 병 어루만지는 손길에

 물 한 잔 청해 마시는 태도에

 화분에 난간 둘러 꽃을 지키는 마음에

 가을걷이 끝난 논둑에 서 있는 모습에

 광장에서 촛불 이어 밝히는 가슴에

 구하기 힘든 마스크 기부하는 발길에

 스쳐간 눈빛 떠올라 밤을 잊은 얼굴에

 새벽 어둔 마당에 나와 선 뒷모습에

 

 새 우는 소리 들어야 잠들 수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흔들리는 시외버스 승객들

 

 <해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가짐에 대한 간명한 속담입니다. 

 시외버스를 탔는데 어디선가 새 울음이 들립니다. 어떤 승객이 아이 엄마에게 그 소리 좀 꺼달라고 했습니다. 아이 엄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아이가 새 우는 소리를 들어야 잠을 자요.” 얼떨결에 사과를 받은 승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그냥 아이를 재우라”고 합니다. 아이는 새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승객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을 감거나 창밖을 보거나 생각에 잠깁니다. 

 의식 너머에서 활동하는 몸은 솔직하여 무의식까지 드러냅니다. 간절한 몸짓은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감동을 자아냅니다. 설령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해도 몸은 말과 다르게 진실을 표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겉모습만 보아도 다른 모습들이 연달아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의 모습으로 응축되기 때문일 겁니다. 

 이 시는 지금 시인이 어디에 눈길을 두고 어떤 몸짓을 하는지 잘 알게 해줍니다. 흔들리는 풀꽃을 바라보고, 또 누군가의 갈증을 달래주었을 빈 병을 바라보고, 가을걷이가 끝난 논둑에 서서 빈 들녘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등을 먼발치에서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촛불 광장으로 발길을 돌려 어린 손들과 함께 가슴으로 촛불을 밝히다, 코로나가 번져 구하기 힘든 마스크를 기부하는 발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인은 하찮고 여리고 습기 진 것들을 향해 애틋한 마음으로 눈길을 건넵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나 봅니다.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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