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은 텅 비었지만, 진정한 시나위가 우리에게 왔다.
객석은 텅 비었지만, 진정한 시나위가 우리에게 왔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9.17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의 역설. ‘인간이 멈추자 지구가 건강해졌다’, ‘생태계가 회복되었다’는 지구촌 곳곳의 뉴스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활 불태우며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그 코로나19의 역설이 이번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무대에도 통했다. 팬데믹 속 특별한 도전을 발표한 소리축제가 지난 16일 랜선으로 세계를 이었다. 지상파 방송과 온라인을 통해 선보인 개막공연에서 14개국 10개 단체를 실시간으로 연결한 것이다.

 그동안 소리축제 개막공연은 특권층(?)의 전유물처럼 공개되곤 했다. 축제의 메인 공간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의 경우 2천여 석 규모인데, 이들 좌석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평소 알 만한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치단체가 가장 큰 스폰서이니, 일정부분 이해되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차올랐던 때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듯, 축제의 답습도 시원하게 바꾼 것이다. 총 공연시간은 50분. 너무 짧았고, 현장성과 음향면에서 부족했다. 예측 불가능한 현지 상황과 전송 지연 등의 문제로 완벽히 짜 맞춘듯한 화음도 어려웠다. 때문에 소리축제 마니아층이나 월드뮤직을 자주 접했던 이들에게는 흡족한 공연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지점이 따로 보였다. 지역 유지나 전문가들을 위한 파티는 없었지만, 소리축제를 처음 만나거나 기다렸던 대중을 위한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주 안가도 볼 수 있어서 아쉽기도 하고 좋기도 하네요.”

 “집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공연을 생방송으로 관람할 수 있다니, 감사해요.”

 “아이들과 둘러앉아 소리축제를 관람하고 있어요.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가족과 즐기는 소리축제 좋아요.”

 “러시아 주상트페테르부르크총영사관에서도 응원합니다. 내년에는 상트로 꼭 오세요!”

 랜선이 연결되니 누구나 관람할 수 있었고,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누구나 관람평을 남길 수 있었고, 누구나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러시아 연방 투바 공화국의 후메이 비트가 연주하는 흐미가 나오자 “목소리가 악기네요. 너무 신기해요”라며 흥미로워했고, “투바 지역이 어떤 곳일지 궁금해요”라며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현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네덜란드 보이 아키 듀오의 목소리를 들으며 “말루쿠의 언어, 사라져 가는 언어를 기억하고 싶다”며 감동을 나누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노래로 하나가 된다”, “세계가 소리로 하나가 되고 있다”며 가슴 찡함을 표현하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이제 이들의 소중한 첫 경험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가 소리축제의 다음 과제가 되었다. 우리 시대가 원하는 축제의 풍경은 따로 있었던 것 아닐까? 물리적 객석은 텅 비었지만, 그보다 더 큰 감동으로 꽉 채워진 진정한 시나위가 우리에게 왔다.

 김미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