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 - 의병대장 문태서 순국비
9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 - 의병대장 문태서 순국비
  •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 승인 2020.09.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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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대장 문태서 순국비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879-3)
의병대장 문태서 순국비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879-3)

무주군 설천면에 위치한 의병대장 문태서 순국비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덕유산을 거점으로 활동한 항일 의병대장 문태서 애국지사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문태서 의병장은 경남 안의현 출신으로 26세 되던 1905년 일제에 의해 불법적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을 만나 격문을 내어 의병을 모집할 방책을 상의하고 호남지방으로 내려가서 지리산에 들어가 거의하였다.  

1907년 1월 무주 부남면 고창곡에서 일본군을 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 총기 50여 정을 빼앗은 뒤 덕유산 원통사로 들어갔는데 강원도 원주 사람 이병열 등 7명이 와서 무기를 제조하는 등 협조하였다.  

이듬해 1908년에는 무주 덕유산을 근거지로 영남·호남 및 호서일대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는데, 2월 28일 60명의 의병을 이끌고 무주 주재소를 급습하여 적 5명을 사살하고 적군에게 체포되었으나 극적으로 탈출하였으며 4월에는 부하 150명을 통솔하고 장수읍을 공격하고 일본군 다수를 살상하였으며, 총기 등을 획득하고 주재소, 군아 등을 불질렀다.  

1909년 활동 지역이 점차 확산되어, 대덕산을 거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방면으로 이동하면서 유격 활동을 이어 나갔다. 4월 24일에는 4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용담군 이동면을 공격하였으며, 5월 8일에는 전라북도 남원군 문성 동북 지역에서 100여 명의 부하들과 더불어 일본군과 접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0월 30일 경부선 철도를 이용하던 일본 경비병과 일본인들을 사살하고 이원역 건물과 화물 열차에 불을 질러 이원역 소각전(伊院驛燒却戰)을 일으켰다. 11월에는 무주군을 근거로 영동·옥천·청산·금산 등에서 항일전을 벌여 적군을 다수 사살하고 총기를 노획하였다. 

1911년 8월 17일에 매부의 집으로 잠시 내려가 매부의 지인과 함께 담화하던 중 일본군에 노출되어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서울로 옮겨졌으며, 시종 기개를 굽히지 않다가 1913년 2월 4일 옥중에서 자결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1964년 5월 지역민들이 문태서의 뜻을 기려 기념비를 세웠으며 2002년 11월 1일 국가 보훈처에서 현충 시설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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