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牛) 위령제
소(牛)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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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1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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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만 관객을 울린 영화 ‘워낭소리’는 팔순의 노부부가 30년 넘게 애환을 함께해온 누렁이라 불리는 소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 쌀겨에 된장을 풀어 끓인 쇠죽을 먹이면서 애지중지 키워 온 소와의 일상을 절절히 그렸다. 암소인 누렁이는 일반적 소의 수명인 15살을 훨씬 넘긴 마흔 살까지 다리가 불편한 노부를 싣고 달구지를 끌었고 밭을 갈았다.

 ▼노부는 누렁이에 해롭다며 밭에 농약도 치지 않았다. 노부부에겐 누렁이가 친구였다.. 2009년 영화 개봉 후 주인공인 누렁이 무덤에는 민들레꽃이 수북이 피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노부부가 민들레꽃이 늙은 소에 좋다고 많이 먹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부는 85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집 근처에 봉분을 올려 묻어 준 누렁이 무덤을 매일 찾아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고 한다. 2012년 전남 강진 군등면 명암마을의 70대 노부는 25년 동안 동고동락을 해왔던 소 황순이가 숨지자 장례를 치르고 집 옆에 묻고 비석까지 세웠다. 옛사람들은 소에게 하인이나 종살이에게 쓰는 식구라는 의미인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특히 소를 조상처럼 위한다는 뜻인 ‘소는 농가의 조상’이라는 속담도 있다.

 ▼지난 10일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에서 지난 7일~9일 사이 수해로 죽은 700여 마리의 소들의 넋과 애지중지 키워온 농가를 위로하는 위령제가 마을주민들의 곡소리와 함께 열렸다고 한다. 소의 눈망울을 보고 “오 저렇게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라고 감탄한 어느 시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소를 먹을거리로만 의미를 갖는 세상에서 죽어서도 이어지는 소와 사람과의 우정이 다소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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