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호 시인, 색 이론의 완성 시집 ‘색Ⅲ’…원로의 정겨운 말맛
조기호 시인, 색 이론의 완성 시집 ‘색Ⅲ’…원로의 정겨운 말맛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9.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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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설적인 표현과 위트 넘치는 시어들이 난무하니 통쾌함이 그만이다.

 원로의 걸쭉한 욕설이 통통 튀는 시어가 되어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무거운 깨달음을 전한다.

 최근 우리네 아픈 근대사를 관통했던 장편소설 ‘색’을 발간하면 깜짝 소설가로 변신했던 조기호 시인이 이번에는 색이론의 완성시집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시집을 출간했다. ‘참 지랄 같은 날’이란 부제가 붙은 조기호 시인의 시집 ‘색Ⅲ(도서출판 바밀리온·1만4,000원)’다.

 앞서 발간한 장편소설 ‘색’이 이념과 사상, 주의 등으로 통했던 인류 역사 즉 색의 역사를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면, 이번 시집 ‘색’ 역시 소설과 일맥상통한다. 소설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느꼈던 옛 과거 기억들을 소환했던 시인은 여든 해를 넘긴 인생풍경을 이런저런 비유로 담아낸다.

 시인은 굴곡진 현대사 속에 색깔이 다른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얻었던 아쉬움과 원망을 쏟아낸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추억 속 여인은 대뜸 예수 믿으라며 자기 남편 예배당에 나오라고 하질 않나, 수술 마친 회복실에서 눈을 뜬 아내의 첫마디는 아들 녀석 이름이라니….

 사람을 15등급으로 분류한 신문칼럼을 보고 15등급 안에도 끼지 못하는 기구한 시인의 운명에 신세타령을 해보는가 하면, 삼복 무더위에 집에 계신 반려견이 더우실까봐 에어컨을 켜주고 출근하며 개만도 못한 인간임을 뉘우친다.

 이런저런 날들을 보내며 시원하게 ‘참 지랄 같은 날’이란 내뱉는 시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꽂히면서도, 이제는 저승문 가깝게 다가섬을 깨닫고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고 있는 시인의 모습에 마음이 무겁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나약한 인간이 바로 우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색이건만, 그것에 매달려 죽이고 헤어지고 부서지니 아직도 부족한 우리네 모습인 것이다.

출근길에 휴대폰과 보청기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는 건망증에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가도 꼬깃꼬깃 점심 술 밥값을 주머니에 찔러주는 자상한 아내 덕분에 마음이 녹질 않던가?

 이승의 끝자락에서 봄날을 되돌아보고 있는 시인의 말맛이 정겹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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