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의 본질? 밥그릇 논쟁을 넘어서…
의사 파업의 본질? 밥그릇 논쟁을 넘어서…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0.09.08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업과 사법 조치라는 정부와 의사협회가 정면 대결 양상으로 진행되던 의·정 갈등이 지난주 극적 타협에 이어, 마지막까지 강경 투쟁을 고집하던 전공의들이 일단 현장에 복귀함으로써 한 달 이상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이번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국면에 접어든 듯하다.

  하지만 의사고시를 거부하여 이미 원서접수 시한을 넘어 차질이 불가피한 의대 4학년들의 구제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고 있어 이것이 새로운 불씨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의·정 양쪽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국민이 ‘스스로 거부한 시험에 대해 무슨 구제방안이냐’며 스스로 결정한 의대생들이 불이익도 감수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올해 3,000명에 달하는 새로운 의사가 배출되지 못하면 각급 병원의 인턴, 전공의의 수급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방역의 핵심 인력인 군의관, 공중보건의의 배출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으므로 정부로서도 마냥 모른 척만 할 수도 없는 처지일 것이다.

  이점이 사사하는 바처럼 의사가 한 분야의 전문인력뿐이지만, 좋든 싫든 의사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공공성과 필수성을 가진 직업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의대 정원의 증가를 둘러싼 논쟁에서 코로나19의 심각한 사태 중에도 ‘공공성’보다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려는 태도만을 보이는 의사들에게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집단 이익을 위해 국민을 볼모로 극단적 투쟁을 한 의사들 파업에 옳고 그름이나, 이런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제대로 된 공청회 한번 없이 졸속한 정책을 밀어붙이려던 정부의 근시안적인 불통 정책을 문제로 삼는 것은 사실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본질을 비켜간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방안은 과연 무엇일까?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의 숫자는 OECD 평균 3.5명을 밑도는 2.4명이다. 참고로 주요국가의 의사 수를 비교하면 미국 2.6명, 독일 4.3명, 프랑스 3.2명, 일본 2.5명, 영국 2.8명이다. 반면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의 숫자가 많은 주요국은 이탈리아 4명, 스페인 4명, 호주 3.8명, 스위스 4.3명 등이다. 의외로 선진국 중에서도 의사가 부족한 국가는 제법 된다. 미국은 의사의 소득이 높기로 유명하지만, 만성적인 의사 부족 문제가 늘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의사의 숫자는 단지 수치일 뿐 실제 국민이 의료서비스의 이용하기 위한 접근성이 어떠한 지도 평가해야 한다. 바로 의료서비스 이용자가 필요로 할 때 의사나 의료서비스가 적시, 적기에 제공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면에서, 대한민국은 국민 1,000명당 의사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보편적 의료접근성 자체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쉽지 않다.

  이는 대한민국의 의료제도가 매우 특수하기 때문인데, 첫째로는 낮은 가격으로 전 인구를 모두 포괄하는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존재하는 한편, 주치의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누구나 필요한 병원과 의사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반면 영국은 주치의 제도와 비탄력적인 공공의료 제도에서는 아파도 수일, 수 주씩, 심지어는 위내시경을 한번 하려면 몇 개월을 대기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미국은 너무 비싼 의료비로 인해 결코 쉽사리 병원을 찾아 내시경과 뇌 MRI 같은 검사를 함부로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위, 대장 내시경 그리고 뇌 MRI 촬영까지 다 할 수가 있다. 그것도 십 수만 원만 들어서 말이다. 사실상 이런 접근성과 가격경쟁력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공공보건 지표를 의사의 수와 함께 놓고 판단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인구비 의사의 상대적 숫자가 OECD 평균보다 적음에도 통상적으로 상당히 양호한 의료접근성과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현재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숫자가 아니라 정부도 주장했듯이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간 의사 수의 불균형과 감염내과, 소아외과, 중증 외상 외과 같은 필수 전공과의 의사 부족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는 정부도 인정하듯이 매우 낮아 의료행위 대다수가 원가에 70% 선으로 원가 보전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수가가 낮으므로 인간의 생명과 더욱 가까울수록, 그리고 수술의 사례가 많을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에 의사들이 특정 의료행위를 경제적으로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표면화된 문제가 바로 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로 연결된다. 이런 기피 전공과목의 의사 부족 현상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나마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환자 수요가 많아 기피 전공도 어느 정도 버티지만, 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버틸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 부족’ 문제의 본질은 지역 간, 전공별 의사의 불균형을 말하며 그 원인은 사실 의사 절댓값의 부족보다는 건강보험수가나 정부의 의료자원 분배정책의 실패에 따른 결과라 생각할 수 있다. 지금 이러한 지역 간, 전공별 의사 수급의 불균형을 해결할 방법은 머릿수 늘려서 무책임하게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소신과 사명감으로 좀 더 필수적인 의료에 뛰어들 의사들이 ‘필수진료의 수가 현실화’ 같은 안정적으로 활동할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지방과 필수 전공과목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