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전북문학기행>13. 숲의 그늘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따뜻함, 조율 시인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2020전북문학기행>13. 숲의 그늘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따뜻함, 조율 시인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9.0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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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시 운봉읍은 지리산의 서북면 쪽에 있다. 언덕과 언덕을 넘으면 섬진강의 발원지가 가까워져 온다. 삼산마을 회관을 건너 서어숲마을은 숲이라기 보다는 논과 밭으로 가득 차 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행정마을의 손바닥만한 면적에 꿋꿋한 나무들이 녹빛으로 빛난다. 이 숲에서 서어나무들은 고요한 그늘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자작나뭇과(科) 갈잎큰키나무인 서어나무는 흔한 나무이면서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서어나무의 이름은 한자 서목(西木)에서 유래했으며, 서목은 ‘서쪽나무’라는 뜻이다. 이는 나무가 어릴 때도 음지에서 잘 자라는 음수(陰樹)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늘에서 자란 숲이 만든 이 그늘은, 기대고 싶은 편안함이 어려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세와 별개로 숲 속에서 여름 바람을 즐기는 아이들과 부모의 모습 속에서 희망의 모습을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숲을 다룬 시 중에 조율 시인이 쓴 ‘서어나무 숲’이 있다. 시인은 ‘어렸을 적 엄마와 시골길을 걷다가 그 곳에서 지냈던 시간’을 시에 새겼다. 특히 ‘온갖 구름들 즐비한 날엔 투명해지며 울 것만 같다고’ 라는 부분에서, 그곳을 걸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겼다.

 조율 시인의 글에서 전북을 소재로 한 글들은 많지 않지만 이미지들은 선명하다. 시인이 설명하는 장소들은 시인의 마음 속에서 세밀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집에서 ‘전주 천변에 버드나무들이 있는 거리에 파도소리처럼 지나가던 소리’, ‘어린 동생의 손을 붙들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학교인 우아동으로 가던 남부 초입 버스정류장 새벽 6시의 거대한 깡통난로’ 등을 세밀화처럼 기억하고 있었지만, “전북을 소재로 했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고향에 있었던 시간들과 그 시간과 닮은 많은 타인의 시간들을 바라만 보고 있던 시간들이 함께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는 시인이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이는 순간·풍경과도 연결됐다. 시인은 “잠들기 전, 풍경 속을 거닐 때 보단 그 곳에서 돌아와서 그곳을 떠올릴 때라든지, 오래전 지나갔던 시간들에서 정제된 감정일 때에 생각이 난다” 며 “돌아와 홀로 있는 방식으로 세월이 수초 수분 수십 분이 간다는 것은 불면이기도 할테지만, 그 장소에서 돌아온 후 생각을 한다”고 설명했다.

 시인에게 마음 속 풍경과 전북은 어떤 차이일까. 조 시인은 전북과 문학에 대해 “전북의 소소(炤炤 : 밝게 보임)한 풍경들이 문학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경치들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지형적으로는 어딜 보아도 산인 곳도 있지만 그늘이 있을 때는 새어 들어오는 빛이 그늘 곁에서 빛나는 것을 보며 존재를 비춰준다”고 설명했다.

 마을의 작은 숲이 만들어주는 휴식은, 마음 속의 따뜻한 그늘이 되어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창 밖의 빗물처럼 훑어주는 것일까. 서어나무 숲의 그늘은 흐린 하늘에서도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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