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1) 김현숙 시인의 ‘밀주’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1) 김현숙 시인의 ‘밀주’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9.0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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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주’

  - 김현숙

 

 밀주를 담그는 어머니의 손이 재빠르다

 

 고두밥을 쪄야 하고

 누룩도 빻아서 넣어야 하고

 항아리에 물을 붓고

 아랫목에 모셔 놓아야 한다

 
 세무서에서 밀주 조사를 나오기 전에

 얼른 술을 익혀야 한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술의 발효 소리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이 익어 간다
 

 나의 시가 잠복기를 거쳐 발화하고 있다

 발각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온몸으로 얼굴을 붉히며

 숨겨가며

 

 <해설>  

 어머니는 술 빚는 솜씨가 참 좋았습니다. 봄이 오면 진달래꽃을 따다 두견주를 빚었고, 집 울타리에 복숭아꽃이 피면 도화주를 빚었고, 아카시아 꽃이 피면 긴 대나무에 낫을 묶어 덜 핀 꽃숭어리를 골라 꺾어다 평상에 부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일일이 꽃자루를 잡고 꽃을 훑어 내 고들고들 해지면 누룩을 섞어 열흘 정도 아랫목에 술 항아리를 묻어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가향주 뿐 아니라 탁주도 잘 빚었는데, 술지게미를 체에 밭쳐 내는 방법에 따라 술 이름도 달라집니다. 술밑은 사카린을 넣고 푹푹 끓여 자식들에게 먹였고. 술지게미는 닭 모이로 줘 술에 취한 닭들이 비슬비슬 걷다가 쓰러지곤 했어요. 

 그 시절은 왜 그리도 밀주 조사를 자주 나왔던가요. 술 조사가 나오면 어머니는 술동이를 이고 허겁지겁 뒷논 짚 낟가리 속에 숨겨 놓고 얼마나 마음을 조렸는지 얼굴빛이 누런 누룩 빛이었습니다. 조사원이 동네 몇 집을 찍어 뒤지고 돌아가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아랫목 항아리에서 술이 보글보글 끓어오릅니다.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과 함께 술의 발효 과정을 보면서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서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네요.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듯 시인 역시 시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던가요. 그러나 시인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시가 세상에 발각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하네요. 농주가 힘들게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하듯, 코로나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는 단술 같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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