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실체를 보라, 그리고 따뜻이 껴안길
위험의 실체를 보라, 그리고 따뜻이 껴안길
  •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 승인 2020.09.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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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온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는 선진국이라 자처하였지만, 이 코로나 19 앞에서는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것 같아 무력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잘 대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8월 15일 이후 전국이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루에 확진자 수를 한 자릿수로 통제하면서 자신감을 가졌는데, 광복절 이후 열흘 넘게 300명 이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사회 속 거리 두기’를 통해서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던 사회 분위기는 금방 싸늘하게 식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바로 2013년에 개봉된 김상수 감독의 영화 『감기』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와 정유정의 소설 『28』도 떠올랐다. 2012년에 개봉한 박정우 감독의 『연가시』도 스쳐 갔다. 외국영화로는 1978년에 제작된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도 떠올랐다.

 영화 『감기』에는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홍콩에서 밀항해 온 노동자들이 평택을 거쳐 분당으로 밀입국하는데,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시쳇더미 속에서 혼자 살아남은 ‘몸싸이’는 밀입국 단속반에 걸리지 않으려고 도주한다. 그런데 그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감기에 걸린다. 모두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피를 토하면서 죽게 되는데, ‘분당’이라는 영화 속의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일단이 감기에 걸렸다 하면 36시간 이내에 죽게 된다.

 거대한 도시 분당에는 감염병으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보균자도 나날이 늘어나지만 정부에서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시체를 태워야 하고 보균자도 죽여야 하는 상황이다. 다른 지역으로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는 분당이라는 도시를 고립시켜야 하는 매우 위중한 상황이 펼쳐진다. 정치가들은 자신의 추후 행보와 관련하여 저마다 다른 계산을 할 뿐이다. 한편 강경론자들은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니 다수의 국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분당 주민의 희생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영화의 개봉 당시 유독 ‘재앙’을 주제로 한 콘텐츠들이 많이 나왔다. 이런 콘텐츠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재앙이 단지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두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했다. 기후 변화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자연파괴는 악성 바이러스 창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금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 19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하여 학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을 지적한다.

 영화 『감기』에서 보여준 정치적 이해, 집단적 이해는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광화문 집회와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도 누구도 참회와 반성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건 당국의 노력을 폄하시키고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필자는 이 상황을 보면서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에 나오는 스콧 목사를 생각했다.

 뉴욕에서 아테네로 항해하던 호화 유람선 포세이돈이 거대한 해일 때문에 뒤집히면서 선상 파티를 즐기던 승객들이 어쩔 줄 몰랐다. 이때 프랭크 스콧 목사는 “과학적인 판단을 근거로 뒤집힌 배의 상단으로 올라가라”라고 한다. 기기에 ‘에어포켓’이 있어서 구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객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스콧 목사는 “신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배의 상단으로 가서 승객들을 구하고 스스로 몸을 던져 뜨거운 김이 쏟아져 나오는 밸브를 잠그다가 익사하고 만다.

 영화 『감기』에서 지도자급 인사들이 자기만의 셈법에 바빴듯이 코로나 위기에서도 이 땅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해에 정신이 없었다. 필자는 이번 코로나 위기를 직면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개인과 집단의 터무니없는 욕망에 가슴 뜨거운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위험의 진실(실체)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맹목적 탐욕에 빠진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했다. 정치도 그랬고 종교도 그랬다. 어렵고 위태로울수록 사람들의 아픔을 따뜻이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까.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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