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가을 농사 준비
8월 25일 가을 농사 준비
  • 송일섭 염우구박네이버블로거
  • 승인 2020.09.03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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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2주간의 방학을 마치고, 가을 농사를 준비하는 날이다. 방학 동안 가을 농사를 위해 배추모종도 가꾸고, 선생님들끼리 만나서 2학기 농사계획도 세워 두었다. 비를 뚫고 싹이 튼 배추모종은 잘 자라더니 벌레의 공격으로 힘들어한다. 태풍이 지나간 후 본밭에 자리를 잡기 전까지 잘 버텨주어야할텐데 걱정이다.

 아이들이 방학동안 집에서 키워오기로 한 배추 모종들도 수난을 겪긴 마찬가지다. 효주네 배추 씨앗은 새가 파 먹었는지 온데간데 없고, 다른 아이들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영원히 잠들어버렸나보다. 진안에 사는 상빈이는 본 잎 2장을 키워왔고, 아파트 사는 예성이 배추 모종은 부족한 햇빛 때문에 창백하다.

 그래도 방학 동안 배추 싹을 틔워 모종을 키운 아이들은 개학 날이 무척 기다려졌을 것이다. 웬만한 정성 없이는 배추 한 포기도 키워낼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을까? 1학년 담벼락 아래서 벌레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배추 모종들 덕분에 우리는 밭을 정리하고 일구어야할 이유가 있으니 오늘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텃밭 수업에 임했다.

 

 청년농부 이슬샘의 공식 질문으로 수업을 연다.

 <텃밭의 변화 알아보기>  -텃밭에 가본 사람?

 2학년 친구들이 손을 든다. 어제 선생님이랑 노랑쥐이빨옥수수를 따러 텃밭에 다녀온 보람이 있다.

 -텃밭이 달라진 점?(옥수수를 누가 파 먹었어요. 해바라기가 자랐어요.) 아이들은 참으로 정직하다. 텃밭의 흙을 밟아본 만큼, 드나든 횟수만큼 텃밭을 마음에 담는다. <배추 씨앗 공부>  오늘은 배추를 심을 밭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하니 배추가 등장할 차례다.

 -방학 전에 심은 씨앗은 무엇인가요?(무릉 배추요)

 배추 모종을 내면서 무릉배추, 무릉배추 노래를 불렀는데 다행이 아이들이 기억을 한다.

 -방학 전에 심은 씨앗에서 싹이 튼 것을 본 사람?

 1학년 아이들은 배추 싹이 튼 것을 보고 방학을 했는데 별 반응이 없다. 이슬샘이 배추 씨를 칠판에 그린다.

 -씨앗은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가지고 있어요. 떡잎은 씨앗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씨앗에서 뿌리가 나오고, 본잎이 나올 때까지 떡잎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써요. 그 다음엔 떡잎은 말라서 없어지지요.

 

 <무씨, 배추씨앗 비교>  이슬샘이 아이들 손바닥에 무씨 한 개씩을 떨어뜨려 준다.

 -(무 씨앗)무엇처럼 생겼어요?(밥풀처럼 생겼어요. 보리 같아요.)

 -이 친구는 충주 무예요. 이파리를 말려서 먹는 것을 뭐라고 하지요?(시래기요)

 -배추랑 무는 친구예요. 둘다 꽃잎이 네장이고, 십자가 모양인데 배추는 노랑꽃, 무꽃은 연보라색이에요. 이 무릉배추 씨앗은 동향초 형님들이 작년에 심은 배추를 잘 두었다가 올봄에 다시 심어서 꽃을 피워서 받은 거예요.

 -무랑 당근은 이사 가는 것을 싫어해요. 배추는 미리 심어서 시집을 보내지만, 무나 당근은 아예 심을 자리를 정리해서 심을 거예요. 오늘은 텃밭에 자란 풀을 좀 정리하고, 다져진 땅을 좀 파서 이랑을 만들어서 당근씨랑 무씨 뿌릴 밭을 만들거예요.

 이슬샘이 만든 천연 모기기피제를 뿌리고 텃밭으로 향했다.

 

 <노랑쥐이빨옥수수 관찰>  아이들은 농사마무리잔치로 팝콘파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옥수수에 대해 관심이 무척 많다. 볕도 안 좋고, 발육이 영 시원찮아서 올해 팝콘은 어떻게 해 먹나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옥수수가 몇 개 달렸다.

 이슬샘이 옥수수를 따서 껍질을 잘 벗기니 수염이 옥수수 알갱이마다 가지런히 달려있다.

 -옥수수 수염이 원래 뭐였을까?(옥수수 암꽃이요)어제 옥수수 공부를 한 아이들이 대답을 한다. 텃밭에서 이슬샘도 몇 차례 이야기를 해 주었었는데 용케 기억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알게모르게 농사꾼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노랑쥐이빨옥수수 가운데 보라색 옥수수 한 알은 왜 있을까?(썩었어요.)

 아이들다운 대답니다.

 -저기 5학년 텃밭옆에 검정 찰옥수수가 있는데 거기 꽃가루 하나가 이 암술머리에 묻어서 그런거야. 그래서 이 아이만 보라색이 되었네.(신기하다!)노랑옥수수알 속에 보라색 알갱이 한 알 덕분에 자연의 섭리를 공부했다.

 

 <씨앗받기>  -우리가 심은 고추 종류 아는 사람?(수비초?)

 화천재래는 기억이 안 나도, 아삭아삭 맛난 식감의 수비초는 기억이 나나본다.

 -빨갛게 익은 고추 하나씩 따서 이슬한테 가지고와봐요. 고추 씨앗 받게

 아이들은 고추나무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잘 익은 고추 한 개씩을 따 본다. 이슬샘은 즉석에서 고추를 갈라본다.

 -고추 껍질을 이렇게 자르면 씨앗이 있어요. 이 씨앗이 달린 대를 ‘태자’라고 해요. 여러분이 엄마랑 탯줄로 이어진 것처럼 고추씨는 이 태자에 붙어서 열매가 열립니다. 수비초는 이렇게 껍질이 얇고, 화천재래는 껍질이 두껍지요?(색깔도 다르고, 더 통통하네요)아이들은 고추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고추 생김새를 잘 관찰한다.

 

 <밭 만들기>  이제 본격적으로 땀을 흘릴 시간이다. 오늘은 풀을 뽑고 괭이로 밭을 일굴 계획이다. 풀을 가위로 자르고, 호미로 긁던 방식과는 다르다.

 -여기 땅은 너무 다져져서 그냥 씨앗을 뿌리면 무랑 당근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해요. 그래서 흙을 좀 보슬보슬하게 만들어줄 건데, 일단 풀을 뽑아서 거름자리에 모아두고 괭이로 땅을 팔게요.

 아이들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풀뿌리를 뽑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힘을 잔뜩 주고 풀과 싸움을 벌이느라 엉덩방아도 찧는다. 이제 괭이로 밭을 일굴 차례다. 제 몸보다 커다란 농기구를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괭이며, 삽을 다루는 것이 신기했는지 서로 해 보겠다고 지원자가 쇄도한다. 마치 오디션을 보는 것 같다.

 <당근씨앗 뿌리는 방법 알아보기>어느 정도 밭이 모양새를 갖추었다. 이슬샘은 이랑을 고르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랑에 당근씨를 두 줄로 심을 건데, 손가락 하나 정도를 띄우고, 손톱만큼 깊이로 파서 제주흰당근씨앗 두 개씩을 넣고, 흙으로 살살 덮어줄 거예요. 이랑을 평평하게 하지 않으면 빗물에 당근씨앗이 떠내려 가니까 최대한 평평하게 해 주면 좋아요.

 아이들은 이슬샘이 씨앗뿌리는 것을 열심히 관찰했다. 날도 덥고, 시간도 부족해서 4학년 형님들이 이랑을 만들어 놓으면 학년별로 당근씨앗을 뿌려보기로 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고추씨앗 받기>  노랑쥐이빨옥수수를 2학년과 나누면서 수학을 공부했다. 고추는 특징을 비교해서 그려보기로 했다. 이슬샘이 잘라놓은 고추를 비교해 보니, 화천재래는 정말 껍질이 두껍고 통통하다. 수비초는 생김새가 날쌔게 생겼고, 선명한 붉은 빛이 감돈다. 아이들은 두 종류의 고추를 비교해서 그리고, 나는 고추씨앗이 몇 개 인지 궁금해서 씨앗을 세어 보기로 했다.

 -씨앗이 몇 개쯤 될까?(50개요!)

 -내 생각엔 100개는 훨신 넘어 보이는데?

 아이들은 영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10개씩 묶어서 줄지어 보았다. 줄이 더해질수록 아이들도 집중한다. 수비초 고추는 그 작은 몸 안에 씨앗을 123개나 품고 있었다. “씨앗이 진짜 많네요!” 아이들도 놀란다. “씨앗이 매달린 이게 뭐였지? 태 뭐였는데?” “태자요!” 옆에서 그림을 그리던 은송이가 툭 정답을 던져준다. 덥고, 습한 날씨였는데도 이슬샘의 설명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농사느낌>  삽으로 괭이로 땅을 팠어요. 힘들지만 재미있었어요. 지렁이랑 감자가 나왔어요. 멧돼지가 노랑쥐이빨옥수수를 까서 먹었어요. 우리가 먹을 것이 없어요.

 개미굴을 봤어요. 개미알도 봤어요. 개미떼를 봤어요. 불개미도 봤어요.

 2학년이랑 같이 수업을 하니까 힘을 조금 써서 좋았어요. 2학년은 우리를 도와주느라 힘을 많이 썼어요.

 고추를 봤어요. 고추씨를 받았어요. 수비초 고추예요. 씨앗이 123개나 들어있었어요. 고추씨를 잘 말려서 내년에 다시 심을 거예요. 화천재래 고추랑 같이 그려봤어요. 화천재래는 뚱뚱하고, 수비초는 얇고 긴데 둘이 색깔이 달라요. 화천재래가 더 색이 예뻤어요. 덜 빨개서 좋았어요.

 4학년 형님들이 땅을 파서 당근밭을 만들어 놓았어요. 당근을 심어야해요. 손톱만큼 깊이를 파서 당근씨앗을 2개씩 심을 거예요.

 아이들이랑 힘을 모아 농사 글똥을 누었다. 함께 읽어보고, 점심시간을 마쳤다. 뿌듯한 공부였다.

진영란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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