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항일정신과 독립운동 자취를 읽다
진안, 항일정신과 독립운동 자취를 읽다
  • 김추리(춘자)
  • 승인 2020.09.0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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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되짚는 전북 구국혼 2 (10) 진안

 마이산으로 향하는 진안 거리는 벚꽃으로 휘덮여 있었다. 벚나무를 무더기무더기 새로 심었는지 산중턱까지 꽃바람이 휘도는 듯 벚꽃 천지다. 게다가 산 벚까지 함께 피어 마치 꽃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넘쳐나는 벚꽃 사이를 달려가자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야릇하다. 벚꽃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라고는 하지만 항일정신을 추앙하는 맘으로 가득 찬 오늘 아닌가. 일본의 국화인 벚나무의 범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이 심사를 어찌하랴. 오늘 하루는 벚꽃, 아니 벚꽃을 국화로 삼은 그 나라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나 꿈틀거린다. 죄 없는 벚꽃을 바라보는 시선이 자꾸만 흔들린다.

대한이산묘
대한이산묘

 ■ 백년 전 항일운동의 정신을 찾아 나선 길- 대한이산묘

벚꽃으로 뒤덮인 마이산 주차장에 내렸다. 길 건너 바로 앞이 대한이산묘(大韓?山廟)다. 예전엔 그저 길가에 지어진 조그만 기와집 몇 채거니 하고 지나치던 곳이었다. 그러나 국립전주박물관 답사팀으로 답사를 한 후부터는 마이산 탑사를 가기 전 꼭 들러 예를 갖추는 성스러운 곳이 되었다. 이산묘는 조선 건국의 정신과 구한말 구국항쟁의 뜻을 기리는 사당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울분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지사 송병선 선생과 의병장 최익현 선생의 애국충정을 이으려고 1925년 건립한 사당이다.

  이산묘는 고종의 스승인 연재 송병선의 제자들 모임인 친친계(親親契)와 면암 최익현의 제자들 모임인 현현계(賢賢契)를 구성하여 건립하였다. 연재 송병선은 최익현의 제자이다. 이산묘에는 회덕전(懷德殿)·영광사(永光祠)·영모사(永慕祠)·대한 광복 기념비 등이 있다.

  이산묘에는 단군, 태조 이성계, 세종, 고종을 비롯하여 을사년 이후 순국한 의사·열사 및 조선의 명현들을 포함한 79위를 배향한 국내 최대의 사당이다. 홍살문을 지나 조신한 걸음으로 들어선다. 삼태극문을 열고 회덕전 뜰에 들어서서 목례를 올린다. 회덕전에는 단군, 태조 이성계, 세종, 고종을 배향하고 있다. 왠지 회덕전부터 들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산묘에 있는 회덕전
이산묘에 있는 회덕전

 ■ 전직 대통령들 친필과 휘호

근래에 진안군은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자원개발 국비와 전북도 동부권발전회계 도·군비 등 총 10억 원을 들여 유적지를 살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이산묘와 금당사 주변 이동 동선을 정비했다. 사당 앞 넓은 마당에 입간판을 세워 바위에 새겨진 글귀들을 설명해 두었다. 한켠에는 하얀 돌에 ‘호남의병창의동맹단결성지’라고 쓴 김대중 대통령의 친필로 새겨진 비석이 늠름하게 서 있다.

이산묘에는 바위에 새긴 각자와 더불어 건물 현판을 보는 것도 멋지고 알찬 일이다. 외삼문에 걸려 있는 이산묘(?山廟)라는 글씨는 바로 이시영 부통령의 친필이며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로 된 ‘대한광복기념비’가 새겨진 비각이 있다. 또한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청구일월대한건곤’과 영광사 현판이 있으며 영모사 현판은 해공 신익희 선생의 글씨다. 이산묘에서 이런 분들을 글씨로 뵙는 일도 흔치 않은 기쁨이다.

■ 독립유공자추모탑

이산묘 맞은편 충혼늬다리 건너에는 독립유공자추모탑이 있다. 이 탑 바로 뒤 바위에는 ‘비례물동(非禮勿動)’이라는 고종의 친필이 곱게 새겨있다. 고종이 의병 창의를 독려한 글귀라고 한다.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지만 이 글은 1916년 고종황제가 내린 어필로 본뜻은 ‘국권을 회복하고 민족자존을 되찾는 일은 곧 예의이니 이천만 동포는 분연히 일어나 빼앗긴 조국을 되찾자.’는 데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감돈다. 비례물동이 새겨진 바로 아래 바위틈에 현호색이 곱게 꽃을 피웠다. 설움을 내색도 못하고 눈물 아롱아롱 매단 우리 민족의 하늘빛 넋을 보는 듯 아릿한 그리움이 스친다.

‘호남의병창의동맹단결성지’ 비석
‘호남의병창의동맹단결성지’ 비석

■호남의병창의동맹단 집결지 용암

이어서 ‘호남의병창의동맹단(湖南義兵倡義同盟團)’의 집결지인 ‘용암(龍巖)’으로 가자. 여기는 1907년 9월 12일 이석용 의병장이 임실, 진안, 곡성, 함양, 순창, 장수, 남원 등지에서 의병들을 이곳 마이산으로 집결시켜 창의(倡義) 고천제(告天祭)를 거행한 곳이다. 용바위 위에 제단을 쌓고 이석용은 단상에 올라 하늘에 고하는 동맹뇌사를 낭독하였다. “우리의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아룁니다. 우리의 의병 동맹은 한 몸이 되어 순국(殉國)함으로써 나라와 가정을 만세토록 보전할 것입니다. 충성함은 공(公)이며 효도는 사(私)인즉 만약 두 마음을 품었다면 하늘이 벌주소서.”라고 고하고 의병이 지켜야 할 규칙으로 의진 약속 15개 조항과 의령(義令) 10개조를 선포하였다. 500여 의병과 민중을 합하여 1,000여 명이 모였다 하니 하늘도 감동했을 것이다. 10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그 일념에 저절로 숙연해지는 마음 감출 수가 없다.

 

 #마이산에 얽힌 이야기 -금척

 마이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타포니 지질 구조로 된 바위산이다. 신기한 모양으로 난 구멍들이나 갖가지 바위산의 모양이 마냥 신비롭다. 남쪽 바위 기슭에는 크고 작은 암벽에 새겨진 글씨가 있어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필대
주필대

  그 가운데 주필대(駐?臺)는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마이산에 30일간 머물며 건국의 대의를 품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새긴 글자라고 한다. 주필대 옆에는 마이동천(馬耳洞天)이라는 글자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제명록이 선명하다. 그뿐이 아니다. 마이산처럼 영험한 산에는 전설 같은 또는 신화처럼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기 마련이다.

  금척(金尺)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을 하기 전 팔도를 다니면서 산신(山神)에게 기도를 드렸다. 진안 마이산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 금척으로 장차 삼한의 강토를 헤아려 보라.”고 하면서 금척을 주었다는 것에서 유래한 몽금척도 이야기다. 마이산의 다른 이름이 속금산(束金山)이다. 금으로 된 자를 묶은 묶음을 신인(神人)으로부터 받는 몽금척도가 마이산 은수사 태극전에 걸려 있다. 어쨋거나 끈 뜻을 품은 사람의 꿈에 신이 나타나 나라를 바로 잡으라는 분부를 하며 금척을 주고받는 꿈이라니. 꿈에서 깨어보니 정말 손에 금척이 쥐어져 있었다니. 예사롭지 않음에 틀림이 없는 일 아닌가.

 

김추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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