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을 깨달을 때, 낭패(狼狽)를 면한다
부족함을 깨달을 때, 낭패(狼狽)를 면한다
  •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9.0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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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가 셧다운 일보 직전이다. 이 와중에 미·중 무역 분쟁으로 시작된 미·중의 갈등이 전쟁이라도 불사할 정도로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중 모두 서로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는 미·중 갈등 속에 어느 한쪽으로 줄을 서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미·중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현 상황을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불만이 많다. 서로 대립하면서 사회나 공동체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대립,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

 개인들이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경쟁하면서 대립하고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은 자신들의 단점을 상대방에게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온순한 사람도 예민한 부분이 꼭 하나는 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약점이 될 수도 있고 콤플렉스가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단점을 숨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상대방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심리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건드리면 화를 참지 못하고 성질을 낸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역린지화(逆鱗之禍) 현상이 일어난다. 전국 시대에 한비(韓非)는 자신의 저서 한비자(韓非子) 설난편(說難篇)에서 역린지화(逆鱗之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용은 상냥한 짐승이다. 가까이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러나 턱밑에는 지름이 한 자나 되는 비늘이 거슬러서 난 것이 하나 있는데, 만일 이것을 건드리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만다. 군주에게도 또한 이런 역린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하다.” 이 고사성어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 내지 콤플렉스를 함부로 건드리게 되면 결국 큰 화를 입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 진의를 전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역린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중국에는 전설상의 ‘낭’과 ‘패’가 있다. 이것을 합치면 ‘낭패(狼狽)’다. ‘낭패(狼狽)’의 의미는 부족함과 부족함의 만남을 일컫는다. “‘낭’은 앞다리만 있고, 뒷다리는 없다. ‘패’는 뒷다리만 있고 앞다리가 없다. ‘낭’은 힘세고 강하지만 좋은 머리가 없다. ‘패’는 순하지만, 뛰어난 지능이 있다.” 이 전설의 동물 ‘낭’과 ‘패’는 서로 협력하기는커녕 서로 비난하고 상대의 약점을 끄집어냈다고 한다. 서로 협력해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상황에서도 서로 비난하고 양보가 없으면 둘 다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우리말에는 ‘낭패를 당했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낭패’를 협력이 안되는 것을 전제로 “되는 일 하나도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에 반해 중국에서는 ‘부족함과 부족함’이 만나서 협조와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로 쓰인다. 어찌 보면 부족한 ‘낭’과 ‘패’가 만나게 되면 협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잘난줄 알고 믿고 산다.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옳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부족함을 잘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렵고 힘들게 살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좁은 자기 세계 속에서 살다가 인생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번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뒤 돌아보면 자기도 잘못한 일이 많고, 실패한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참된 지혜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면 자식들도 부족함이 무엇인지 모른다.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행복할 수 없다.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손에 쥐여주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 부모들이 자식들의 행복을 위한다면서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법칙을 알면 행복이 보인다. 행복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버림으로써 얻어진다. 행복은 자신이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얻어진다. 행복은 98%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면서 부족한 2%를 포기함으로써 얻어진다.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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