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여름비 등 5권
[신간] 여름비 등 5권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9.0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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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비 

 콩쿠르 상 수상 작가이자 프랑스의 대표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여름비(미디어창비·1만3,000원)’가 소설가 백수린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여름비’에는 뒤라스의 작품에 등장했던 주제들이 집약돼 있다. 망각과 광기, 침묵과 소리, 가난과 열정, 외면과 죽음이 마치 그물처럼 엮인다. 파리의 소도시 비트리에 살고 있는 열두 살 에르네스토는 어느 날 불탄 책 한 권을 반견한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였지만, 불현듯 불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시작한다. 피상적인 지식만 습득하는 학교 교육에 회의를 느끼며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부모 형제들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엿보이는 통찰과 함께, 여동생 잔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뒤라스의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들로 그려진다.

 ▲나혜석의 말

 여기 한 여성이 있다. 촉망받는 화가이자 작가였지만 시대는 그에게 아내, 며느리로서의 삶을 살라고 강요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신여성이 붙고 시대와의 불화가 함께한다. 여성이기 전에 한 인간이기를 바랐지만, 그의 삶은 시대와 어울리지 못했고, 시대는 그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나혜석의 말(이다북스·1만4,500원)’은 나혜석의 글들을 묶은 책이다. 19살 때 쓴 ‘이상적 부인’에서 1923년 ‘모(母) 된 김상기’, ‘이혼 고백서’, 그리고 41세 때 쓴 ‘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까지 14편을 실었다. 이 책을 통해 “여자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자립적인 한 인간으로 당당히 서고자 했던 나혜석의 삶을 읽을 수 있으며, 남성 중심적 사고로 인해 여전히 고통 받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여성 문제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미안함에 대하여

 진보 지식인 홍세화가 2014년 4월 16일 이후 6년 동안 쓴 킬럼을 책으로 묶었다. ‘미안함에 대하여(한겨례출판·1민5,000원)에서 저자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가난의 대물림을 본다. 그는 우리에게 요청한다. 가난이 죄가 되는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발언할 수 없을 때, 부러움 때문이든 시기 때문이든 부의 대물림을 보는 대신 대물림되는 가난을 보자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안간힘처럼 내보자고 말한다.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변방일까? 저자는 중심은 단지 하나의 점일 뿐이라고 본다. 중심 밖의 점들이 연대할 때, 그 선이 변두리가 된다. 사회의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인간의 고통과 불행이 불거지는 곳,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여는 장소가 변방이다.

 ▲구해줘, 밥

 ‘한국인의 밥상’ ‘화제집중’ ‘100분 토론’ 등 굵직굵직한 방송의 메인작가를 맡아온 21년 차 방송작가가 김준영. 냉혹한 생존의 정글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그였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치열함에 지쳐 서서히 무너지고 있던 중 우연히 구석에 쳐박혀 있던 한국인의 밥상 제작노트를 발견했다. 4년여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삶과 그 삶이 녹아 있는 음식 레시피들을 다시 보면서 뜻밖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저자는 ‘구해줘, 밥(한겨례출판·1만4,000원)’을 통해 지금 분노의 계절을 맞은 누군가에게 진솔한 삶이 버무려진 한 끼 밥상을 나누며 약보다 나은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책에는 촬영 당시 직접 발품 팔아 전국 팔도를 취재하며 만났던 서른세 가지 음식과, 투박하지만 정겨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맛깔나게 담겨 있다.
 

 ▲시간이 멈춘 방

 미니어처에 쓸쓸한 죽음 그 뒤편의 이야기를 담아 묵직한 울림을 주는 ‘시간이 멈춘 방(더숲·1만2,000원)’이 출간됐다. 2014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특수 청소와 유품 정리 일에 뛰어든 고지아 미유, 유품정리사로서 그가 목격한 현장은 참혹했다. 소식불통이던 아버지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자리, 형체마저 사라진 채 뒤늦게 발견된 욕실의 망자, 집 안을 깨끗이 치워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청년, 쓰러진 주인 곁에 있던 반려동물의 사체까지. 연간 370건의 현장을 작업해온 작가는 2016년부터 이렇듯 시간이 멈춘 방을 미니어처로 제작해 세상에 알려왔다. 누군가의 삶이 갑작스레 멈춘 자리, 고인의 마지막 흔적부터 남겨진 자들의 여러 모습이 시간이 멈춘 방을 삶의 한복판으로 다시 불러낸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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