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사는 나라 ‘부동산 약탈 국가’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사는 나라 ‘부동산 약탈 국가’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9.02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같은 지역, 같은 평형이라도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값이 2배까지 차이가 난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다. 아파트를 향한 꿈은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나래를 편다.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사는 나라’라는 말은 부동산에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부동산 대박’에 미친 한국 사회에 주목한다.

 ‘부동산 약탈 국가(인물과사상사·1만6,000원)’는 진보와 보수 정권이 번갈아가면서 발전시켜온 부동산 약탈 체제, 서민들의 삶을 짓밟고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은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이다.

 ‘아파트는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이 괴물이 되었는가?’라는 부제에서 보듯 책은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역대 정권들이 부동산을 통해 어떻게 ‘합법적 약탈’ 체제를 만들어왔는지를 살핀다.

 강 교수는 작금의 부동산 가격 폭등의 ‘합법적 약탈’은 ‘폭력적 약탈’보다도 나쁜 것이라며 분노한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천국이었지만, 그로 인해 피눈물을 흘린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지옥이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내 집 한 칸 마련해 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 전세·월세 값이 뛰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빼앗아가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기에 그렇다.

 사실, 서울로 밀려들었던 지방 사람들은 서울이 좋아서 이주한게 아니었다. 고향에서는 먹고살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던 판자촌은 강제 철거 대상이었다. 철거민들을 쓰레기 내버리듯 서울 밖의 지역으로 내팽개치는 일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그 덕분에 서울은 천박할망정 겉보기에는 점점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갔다. 주거 빈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이들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그 덕분에 부동산 가격 폭등을 통해 무주택자들의 지갑을 터는 부동산 약탈 체제도 평화롭게 지속될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는 한결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22차례나 발표됐지만,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폭등했다. 강 교수는 2019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3기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국가균형발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임을 꼬집는다. 차라리 솔직하게 국가균형발전은 없으니 헛꿈 꾸지 말라고 말해주는 게, 적어도 기만은 없어보인다는 분노인 것이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부동산 약탈의 근본 원인은 서울 집중이라고 진단한다. 아파트와 교육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으니, 부자들의 부모 역할을 하는 정부의 교육 정책을 동시에 문제 삼는다. 입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면서 인구 집중의 강력한 유인인 교육 정책 또한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사기극이라는 이야기다.

 강 교수는 “지방 소멸이 임박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울의 부동산 문제를 수도권 비대화 전략으로 풀겠다는 정부의 근시안적 정략에 대해 지방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며 “말은 똑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아니다. 부동산 약탈이다. 약탈에 대한 분노를 키워 이를 정치 의제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었다.

김미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